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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04 오후 12:59:49 입력 뉴스 > 자랑스런 예천인

[자랑스런 예천인]각궁(角弓)의 맥(脈) 이은 한국 제일의 궁장(弓匠), 권영학씨



[자랑스런 예천인]궁장(弓匠), 명무(名武), 명궁(名弓) 대한민국 유일의 세 가지 기능보유자. 궁장은 ‘최고의 활 제작기술을 보유한 장인’이란 뜻이며, 명무와 명궁은 ‘최고의 활솜씨를 가진 무인’이란 말이다.

 

 

『사자(射者)는 군자지도(君子之道), 활 쏘는 사람은 군자의 길을 걷는 사람』이란 마음가짐으로 활을 만들고 쏘아왔다는 예천궁장 기능보유자 권영학씨(69·예천군 예천읍 남본리 60-3.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6호).

그는 한사코 반대하며 관직에 나아갈 것을 종용하던 아버지의 뜻을 뿌리치고 사회적으로 냉대 받던 장인(匠人)의 길을 선택했기에 살아오면서 한 번도 후회해 본 적이 없다고 한다.

 

 

활의 전승보전을 위해 온 몸을 던져 50여년을 갈고 닦은 기량이 이제 그를 이 반열 최고의 자리에 오르게 했으며 자타가 인정하는 궁장으로 인정받기에 이른다. 그는 어느 분야건 자신이 관여한 곳에서는 어떤 환경이든 일인자가 되려고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것이 자신의 인생철학임을 강조하면서 활은 손이 닿으면 닿을수록 신비스러우며 어렵고 힘든 경지의 연속이라고 한다.

 

 

권씨가 활에 관심을 보인 것은 중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로 기억한다.『재미로 몇 번 해보는 것은 심신수련에 도움이 되나 직업은 될 수 없다』는 아버지의 완고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의 마음 한구석에는 활에 대한 묘한 마력에 끌리는 것을 뿌리칠 수 없었다고 한다. 틈만 나면 심부름을 구실 삼아 아버지를 찾아가 어깨너머로 훔쳐보았다. 이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아버지로부터 여러 번 벼락같은 꾸지람을 듣기도 했다.

 

 

이 같은 활에 대한 미련과 꿈은 서울로 유학을 떠나면서 그의 곁에서 멀어지는 듯 했다. 동국대학교 재학 중 6.3항쟁의 학생운동을 주도하면서 함석헌, 장준하씨를 모시고 강연회를 다니기도 했던 권씨는 재학 중 총무처에서 시행한 4급 시험에 합격하여 주위의 부러움을 받기도 하였지만 활에 대한 집념 때문에 1년 만에 공무원을 그만두게 되었다. 4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그에게 당시 공무원 봉급으로는 자신의 하숙비, 잡비 등을 빼고 나면 집안 살림에 도움이 되지 않아 장남으로서의 책임감이 어깨를 짓눌러 견딜 수가 없었다고 회고했다. 만사를 걷어치운 그는 가업으로 내려오는 활 제조를 전수받기 위해 무조건 낙향하게 되었다.

 

경북 예천은 활 잘 쏘는 고장으로 그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다. 근세에 이르러 예천에서 활이 제조되기는 1920년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이 터지면서 활 만들기가 중단되었고 해방이 되면서 활 만들기에 숨통이 트이는가 싶더니 6.25동란이 일어나 다시 중단되고 만다.

그야말로 혼란기에 들어서면서 제조용품인 연장도구와 각종 재료들은 창고에서 녹이 슬거나 폐품이 되다시피 해 그 맥이 영영 끊길 위기에 몰리기도 했다.

 

그러나 1953년 휴전이 되면서 예천 활의 재현이 다시 시작되었다. 권씨가 공직생활을 그만 두고 낙향할 때는 이 분야에서 아버지(고.권우갑 궁장)의 그 기교가 완숙기를 넘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경지에 이를 무렵이었다. 그러나 모든 인생을 활 만드는데 걸겠다고 나선 자식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아버지의 눈에서는 분노를 넘어서 실망과 함께 눈물을 글썽이기 일쑤였다고 한다. 당시만 해도 장인(匠人)에 대한 경시와 사회적 편견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본격적으로 국궁에 매달린 것은 70년대 초반부터로 기억했다. 활은 손재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심 없는 진실한 마음에서만 명궁이 만들어진다고 했다. 활에는 얄팍한 기교가 없다. 팽팽한 활 끝처럼 곧바로 뻗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활의 현과 같이 곧은 성격, 거짓 없는 성격, 담과 혼이 실린 활만이 진정한 활이 된다고 강조했다. 활을 잡은 사람은 과녁을 맞히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인격수양과 심신수련에 있음을 재삼 강조하고 있는 권씨는 그래서 진정한 활, 전통의 활에는 만드는 사람의 혼이 배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따라서 활 즉, 국궁의 특징은 재료 면에서 순수 천연 재료이어야 한다고 했다. 국궁 제조에는 물소뿔, 대나무, 참나무, 소심줄, 뽕나무, 접착재로는 바다의 미어부레(공기집)가 들어가며 부재료로는 화피(樺皮), 벚나무 껍질(산벚나무), 가죽, 실 등이 쓰인다. 기계가 아닌 순수 수공으로 만들어지는 국궁은 제조기법에 따라 100% 성공 아니면 100% 실패를 가져온다. 그가 활 한 장을 만드는데 많게는 500번 이상 잔 손이 간다 하니 실로 엄청난 노력이 아닐 수 없다.

 

그는 국궁인 이면서도 지난 1970년 사재를 들여 예천여고에 양궁부를 창설하여 김진호와 같은 많은 걸출한 후진을 배출하게 했다. 국궁의 튼실한 토양이 있었기에 양궁의 스타가 나오게 됐다고 말하는 그는 고려청자나 이조백자는 지금 기술로 그 형태를 따라 잡으려는데 까지 와있지만 활은 옛날 그대로 보전 계승하는데 만 안주하지 않고 이를 더욱 발전시켜 나가는데 의의가 있다고 그 나름대로의 국궁론을 펴 보이기도 했다.

 

한때는 연간 최고 470여장까지 활을 만들었으나 요즘은 150~200장 정도 밖에 만들지 못한다는 그는 각 나라마다 고유궁이 있지만 전 세계적으로 볼 때 활의 제조자가 무형문화재로 지정받기는 우리나라의 국궁뿐이라며 활은 조상의 혼이고 숨결이기 때문에 기필코 계승 발전시키는 것이 오늘을 사는 우리의 몫이라 힘주어 말했다.

 

예천 각궁의 기원

예천각궁(국궁)은 오래전 언제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했으며 어떤 경로를 통했는지 성문화된 고증은 없다고 권영학씨는 말한다. 그는 지금까지 알려진 것은 조선시대에 각궁을 비롯해 청궁, 대궁, 예궁, 철퇴궁 등 여러 종류의 활들을 우리 선조들이 만들어 사용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러한 종류의 활들은 조선조 중엽 임진란을 전후해 총포류가 나오면서 서서히 그 자취를 감추었다고 한다. 그러나 각궁(角弓)만은 제조법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는데 이는 다른 모든 활들은 자기 방어 즉, 전쟁무기 또는 사냥용으로 사용했지만 유독 각궁만은 운동기구로 심신단련이 주목적이었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대중화되면서 전해지는 것으로 추정된다. 각궁이 이렇게 전국적으로 보급된 것은 조선조 선조때인 것으로 보고 있다.

 

선조는 경복궁내 오운정(五雲亭)에서 신하들과 활쏘기를 하다가 심신을 단련시키는 운동기구로서 적합함을 깨닫고 모든 백성들에게 상무(尙武) 정신을 심어주자며 이를 널리 보급하도록 한데 기인하고 있다 한다.

 

선조는 성 밖 4대문에서 활쏘기(각궁)를 권장해오다가 이를 전국적으로 보급하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때부터 남부지역에는 예천, 남해, 여수등지에서 활 만들기가 성행했다가 최근에 이르러 예천지방에서 다시 크게 성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예천의 왕신고을에는 1920년대부터 각궁 제조가 시작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그 후 1933년 대동아 전쟁, 만주사변이 일어나고 1945년 해방과 6.25사변 등 30여 년간 혼란기에 들면서 활제조가 중단되었으나 휴전이 되던 1953년경 이후부터 재현되기 시작되었다고 한다.

 

대궁, 청궁, 철퇴궁 등 10여 가지의 활들은 단일 재료로 전쟁무기로 사용했지만 순수하고 천연적인 다양한 재료로 제작되는 각궁은 운동기구로 사용되었다. 전쟁무기인 다른 활들은 결국 오늘날에는 거의 소멸되었으나 상대적으로 약한 듯 했던 각궁만이 살아남아 그 맥을 이어가고 있다.

 

 

정차모 기자(jcm542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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