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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13 오전 9:39:07 입력 뉴스 > 예천인터넷뉴스

신도청시대 예천의 장소성과 인문혼(魂)을 찾아서. <11>용궁의 산수와 풍수미학(③)



예천인터넷뉴스는 매월 2회씩 풍수학계의 거목인 이몽일 박사(대한여지연구소장)의 '신도청시대 예천의 장소성과 인문혼(魂)을 찾아서' 를 시리즈로 연재합니다. 많은 관심을 당부드립니다.

 

신도청시대 예천의 장소성과 인문을 찾아서

<11>용궁의 산수와 풍수미학()

 

황목근

(黃木根) ()은 늦둥이 황만수(黃萬壽)와 함께 용궁의 금원(琴原)들에 살고 있다. 주소는 경북 예천군 용궁면 금남리 696번지다. 매년 3만원 남짓 되는 종합토지세와 교육세를 꼬박꼬박 납부하고 있고, 1998년부터 매달 8만원의 정부 보조금을 지원받고 있다. 집은 나지막한 철제 울타리로 둘러쳐져 있으며, 우물도 있고 낙뢰 피해를 막기 위한 피뢰침 시설도 갖추고 있다. 금원마을 안에서 외지 손님을 가장 많이 맞이하는 유명한 집이다.

 

 

2003년 태풍 매미가 왔을 때 경주 양동마을 향단(香壇)5백년 된 향나무가 부러졌다. 후손들은 집의 얼굴과도 같았던 그 향나무를 대신할, 크기는 작지만 아주 잘 생긴 다른 향나무를 구해 그 자리에 심어 놓았다. 20177월 광주광역시 남구 행암동 도동마을에서는 화재로 소실된 당산나무의 대를 이어줄 후손[후계목]으로 마을에서 자란 같은 유전형질의 느티나무를 100년 만에 다시 지정했다.

 

 

주민들은 "고층아파트들이 꽉 들어찬 지금 감회가 새롭고, 우리 마을이 아직 건재하고 있음을 느낀다. 객지로 떠난 사람들이 고향을 찾았을 때 기념비적으로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아 다행스럽게 생각한다"고 입을 모은다. 퇴계선생이 매화나무를 매형(梅兄)으로 칭하며 그 고결함을 체화(體化)하려 했듯이, 영목(靈木) 한 그루는 한 집안의 인문혼(), 더 나아가 한 마을의 장소혼을 상징할 수 있다. 장소혼에는 성()과 속()이라는 단순한 이분법적 차원을 넘어 사람이나 영물이 자존감을 갖고 주체성을 연속적으로 일관되게 유지하며 살아가는, 그 어떤 보이지 않는 힘이 담겨 있다.

 

황목근 옹은 사람이 아니라 나무다. 수령(樹齡)이 얼추 500살 정도인 이 '예천 금남리 황목근'은 천연기념물 제400호로서 필자가 선정한 용궁 최고의 영물[靈物一絶]이다. 그 영물은 사람과 나무, 더 나아가 사람과 자연 간 동행 미학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명징하게 밝혀준다. 회룡포가 우리의 눈() 관광을 즐겁게 하는 시각적 자연미학의 최고모델이라면, 황목근은 21세기 우리의 삶터를 선도해 나갈 정신적 인문미학의 최고모델이다.

 

용궁의 영물일절, 황목근

황목근은 금원들 논틀길에 있다. 가을 들녘 누런 벼가 고개를 숙이고 백로 한 쌍이 뿌연 안개 속 허공을 날아오를 때 그곳은 거의 선경에 가깝다. 그림을 그리거나 예술 사진을 찍는 이들은 그 아름다운 풍광에 압도당해, 우리 조상에게도 저런 넓은 들 한복판에 나무를 심을 줄 아는 심미안(審美眼)이 있었구나 하며 경탄해 마지않는다. 그러나 황목근 주위가 원래부터 논[]이었던 것은 아니다.

 

 

금원마을은 원래 금천(錦川)변 강촌이었다. 지금은 하천제방이 축조되고 금원이 큰 들판을 이루고 있지만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금천 물줄기는 북서쪽에서 현재의 금원들 안으로 흘러들어와 금원마을 앞을 지나 휘넛들 쪽으로 빠져나갔다. 현재 황목근과 그 동남방향 산 밑으로 보이는 네댓 집, 그 사이 공간에 금원마을이 집촌을 이루고 있었고, 그 서북쪽 확 트인 하천변 동구(洞口) 지점에 팽나무가 동수목(洞守木)으로 서 있었다.

 

지금도 황목근 아래에 돌탑으로 된 조산(造山)이 남아 있는데, 이는 마을에서 볼 때 휑하게 뚫려 있는 서북쪽 방향을 보허(補虛)하기 위해 만든 일종의 상징적 비보(裨補)풍수 조산이자 안산(案山)이었다. 나지막한 야산[화암산 북록]을 배경으로 서북향으로 열린 배산임수의 전개후폐(前開後閉) 터에 자리 잡고 있었던 금원마을은 1934년 홍수 때 금천이 범람하면서 폐촌의 지경에 이르고 만다.

 

그 당시 대부분의 집이 큰물에 다 허물어졌는데, 지금 들판 한가운데 농로를 따라 몇 집씩 모여 띄엄띄엄 마을을 이루고 있는 것은 모두 금천제방 축조로 인한 물길 변화와 농촌 근대화 정책으로 인한 마을길 변경 등으로 훗날 생겨난 경관(景觀)들이다. 그 모든 금원마을의 역사를 제자리에서 오롯이 지켜본 목격자가 바로 황목근 동수목이다.

 

금원마을 사람들은 일찍부터 당산제와 풍년제를 비롯한 각종 마을 행사와 친목 모임 등을 위한 공동기금을 마련코자 성미(誠米·)를 모아 만든 돈으로 공동의 토지를 마련해 두었다고 한다. 근대화가 되면서 1939년에 토지 소유권에 대한 법적인 조치가 필요하게 되고 공동재산인 토지를 등기해야 하는 일이 생기자, 뒷날 재산다툼이라도 일어날까봐 아예 마을 당산나무[팽나무] 앞으로 등기 이전을 하기에 이르고, 팽나무라는 보통명사로는 등기가 되지 않자 '황목근'이라는 나무이름을 지어 소유권 이전을 마치게 됐다고 한다.

 

그때가 세계 최초로 재산을 소유한 나무인 같은 군내 감천면 천향리 석송령[천연기념물 제294]이 재산권을 행사한 지 11년 뒤의 일이었으니, 그로써 예천고을은 국내 단 두 그루뿐인 담세목(擔稅木)을 모두 갖는 영예를 얻게 된다. 현재 황목근은 토지대장에 주민등록번호와 같은 고유 관리번호 3750-00735로 기록돼 있다.

 

황목근은, 팽나무가 5월에 황색 꽃을 피운다고 해서 '()'이라는 성씨가 붙여졌고, 또 근본이 있는 나무여서 '목근(木根)'’이라는 이름으로 지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필자는 '황'이 청···흑의 사방 위호를 받는 중앙의 '명당'을 상징하고, 또 '목근'은 땅에 뿌리를 깊게 내리고 하늘과 교통하는 '우주목(宇宙木)'을 상징한다고 해석하고 싶다. 천인무간(天人無間)의 아름다움을 구가하고 있는 금원마을 사람들에게는 그들의 삶터가 곧 '우주의 중심'이기 때문이다.

 

'뿌리가 두터우면 꽃은 고울 수밖에 없고, 샘이 깊으면 물은 저절로 물결을 이룬다'는 말처럼 지금 황목근의 존재 미()는 가히 하늘을 찌를 듯하다. 불어나는 재산을 향토의 대를 이어갈 후손들 장학금으로 아낌없이 내놓고 있으며, 마을 주민들에게는 자기와 같은 영목과 함께 사는 것을 자랑스럽게 느끼도록 해주고 있고, 객지에 나가 있는 출향인들을 '자신[황목근]의 잔칫날'에 고향을 찾도록 만들고 있다.

 

금원마을 주민들은 황목근계()를 조직해 팽나무를 책임지고 보살핀다. 사람들이 하나둘씩 도회지로 빠져나가 노동력이 예전만 못하지만 그래도 황목근 소유의 땅은 반드시 돌아가며 경작해 공동체 공유 재산을 유지하는 데 만전을 기하고 있다. 2002년 황목근 제단 돌 틈 사이에서 발아한 팽나무 싹을 황만수라는 이름을 붙여 황목근 옹 사후에 부동산을 물려받고 세금도 낼 귀한 자손[후계목]으로 지정해 배토를 해주는 등 온갖 정성을 다해 돌보고 있다.

 

황목근 옹은 주민들의 그런 마음을 과연 알고 있을까. 1966년 식물의 자극과 반응에 대한 실험을 한 미국의 거짓말 탐지기 전문가 클리브 벡스터(Cleve Backster)박사는, "식물은 자기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의 생각을 알아차릴 뿐만 아니라, 멀리 떨어져 있어도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정확하게 인식하는 신비한 능력을 가졌다"는 놀라운 결과를 발표했다.

 

1950년대에 인도 아나말라이대학 식물학과 싱(T.C. Singh)교수는 인도전통 음악 라가를 벼, 콩에게 들려준 후, 수확량이 최대 50%까지 늘었다는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우리나라 이완주박사도, "벼에게 사물놀이를 들려주었더니 3할 이상 더 자라고 더 푸르렀으며, 이삭도 빨리 나오고 물속의 해로운 이끼도 줄어들었다"고 말한다.

 

예부터 우리 조상들은 '곡식이 주인의 발걸음 소리를 듣는다'며 자주 논밭에 나가기를 권했으며, 벼가 크는 과정에 따라 사물놀이 방식을 달리해서 놀기도 했다. 해외에서는, 식물은 가스와 전파로 서로 대화를 하며 그 속도가 1분에 24m라는 믿기 어려운 보고도 있고, 해충의 공격이 100m 떨어진 나무까지 알려지는 데 4분 정도 걸린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황목근 그늘 아래에 서니, 뜨거운 햇볕이 누그러지고 산들바람이 볼을 스친다. 이 충화(沖和)된 기운은 옹()이 손님에게 베푸는 깊은 배려이리라. 뻐꾸기 울음소리와, 팽나무 잎과 벼 이삭이 바스락거리는 소리, 흰 두루미 가족의 날갯짓 소리가 금원들을 하모니[和聲]로 가득 채우는 가운데 '인간 같은 나무', 황목근 옹은 지난 세월을 생각하며 추억에 잠겨 있다. 그 모습은 정녕 출렁이는 '()의 바다'에 장엄하게 우뚝 선 한 그루의 거대한 수룡(樹龍)이었다.

 

추억체험 관광의 명소, 금당(琴堂) 포크토피아(folktopia)를 꿈꾸며

후기산업사회로 발전할수록 사람들은 삶의 질을 중시하여 역사·문화와 같은 형이상학적 가치에 주목하게 된다. 각 지자체는 그 같은 사조에 부응해 자기 지역의 '장소자산(place asset)'을 상업화하려 애쓴다. 장소자산은 공간적 실체의 장소뿐만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시설물과 인간의 활동, 가치, 이미지 등 모든 물질적·정신적 가치를 포함하는 개념이다. 각 장소의 차별화된 특성을 바탕으로 한 경쟁력 갖추기가 '장소 만들기(place making)'라면 그것을 홍보하고 관광객을 끌어 모으는 것은 '장소 마케팅(place marketing)'이다.

 

 

속용궁은 비룡산과 회룡포라는 자연지물이 탁월한 단색의 자산장소에 가깝지만, 인문적 유산이 풍부한 바깥용궁은 세 가지의 뚜렷하게 구별되는 자산장소가 혼재한다. 민속, 유교, 불교 특성이 각각 두드러진 장소(topos; topia)들이다. 필자는 이것을 민토(民土)피아·유토(儒土)피아·불토(佛土)피아라 이름붙였다. 3대 인문토피아 중에서 포금산과 그 아래 남쪽의 읍부리 시가지 및 금원 들판 일대를 일컫는 것이 바로 민토피아다.

 

 

민토피아는 읍부1리의 전나무, 읍부2리의 참나무, 금남2리 작은 봇들[1]의 느티나무, 금남22·3·4[금원마을]의 팽나무 등 무려 네 곳의 동신목뿐만 아니라 추억어린 양조장과 참기름 짜는 집, 정미소, 역무원 없는 용궁간이역, 만파루 등 볼거리가 참 많은 곳이다. 걷는 길도 시가지 길과 나지막한 야산 길, 들판 길, 변길 등 다양한 형태의 길이어서 무척 매력적이다.

 

 

이 둘레길이 '다시 만나는 옛 시가지길', '추억의 간이역 길', '시름 잊는 길', '‘건강-장수의 길', '소원지 달러 부자목(富者木) 찾아가는 길' 등 이색적인 탐방길로 꾸며졌다고 가정해보자. 그 코스는 방문객에게는 민속 체험관광이라는 즐거움을 선사하고, 해당 지자체와 지역민에게는 장소 마케팅을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는 힘을 담보해 준다. 용궁순대-용궁막걸리-[용궁]참기름-[용궁]토끼간빵-용궁진상미 등 용궁의 그 어느 특산품 하나도 이 둘레길 코스와 연관되지 않은 게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민토피아의 둘레길이 만들어진다면 용궁 관광은 겉용궁의 인문미관광과 속용궁의 자연미관광으로 조화를 이룰 뿐더러 용궁면소재지는 그저 잠시 들러 밥 한 그릇만 먹고 가는 중간 휴게소 같은 이미지를 벗을 수 있다. 용궁순대축제처럼 그저 단발로 끝나는 행사가 아니라 사시사철 관광객들이 찾는 진짜 용궁다운 명소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문제는 길지낙토다운 분위기 조성이다. 우선 민토피아 주민들이 합심해서 어떤 행사 하나를 하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모인 가운데 좀 시끌벅적하게 진행되도록 해야 한다. 마을 단위로 제각각 열고 있는 어지간한 행사는 통폐합해 좀더 규모를 키워 개최하도록 하고, 가칭 '금당만파농악대' 같은 것을 만들어 그때마다 삶터의 기운을 신명나게 북돋우도록 해야 한다.

 

금원들과 접해 있는  휘넛들의 한자명은 훤평(喧坪)이다. '너들'이 '큰 들[大野]'을 의미하고, ''는 일부 용언 앞에 붙어 정도나 규모 따위가 매우 큼을 나타내는 접두사이기 때문에 '휘넛들'은 '매우 큰 들'이라는 뜻이다. 그것을 용궁 선조들이 '떠들썩할' '()'자를 써서 '훤평'이라는 더 깊은 인문적 의미를 지닌 지명으로 상징화한 것은, 농부들이 마을 옆에 붙어 있는 넓은 들을 오가면서 격양가(擊壤歌)를 불러 그 일대가 늘 떠들썩했기 때문이었다.

 

격양가는 중국 상고의 요()임금 때, 늙은 농부가 땅을 두드리며 천하가 태평함을 기리어 불렀다는 노래다. 그런 축제 음악이 모내기와 백중일[황목근 祭日이기도 함], 추수기 등 농사철에 대여섯 번 용궁 금당들[금원들+휘넛들]에 울려 퍼질 수 있다면, 그 노랫소리는 자라는 곡식에게는 활기를, 그곳에 살고 있는 주민에게는 자존감과 화합심을, 우리 국토에는 도농(都農) 간의 균형을 가져다주는 힘이 될 수 있다. 문화재청이 두 팔 걷어붙이고 전통 민속을 유지, 복원하는 일에 아낌없는 경제적 지원을 하는 것도 다 그런 까닭에서다.

 

용궁 읍부리와 그 일대의 들판은 우리 민속의 보고(寶庫)요 포크토피아다. 황목근 얘기는 역사가 아닌 현실이요, 허구가 아닌 팩트요, 신화가 아닌 실화다. 민속은 삶터 자연을 모태로 생성된 뿌리 깊은 우리네 기층(基層)문화다. 가식적인 껍데기 삶이 아닌 진솔한 인간 삶의 정수(精髓)가 녹아 있다. 도시문화시대는 생명애(장소애·인간애 함양을 필요로 한다. ··인 간의 존재미와 어울림 미(), 나눔과 상생의 미학을 느껴보고 싶은 이들은 용궁 금당 포크토피아를 찾아 피로사회에 지친 자신의 심신을 힐링해 보길 권한다. [이몽일 풍수학자·지리학박사]

정차모 기자(jcm542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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