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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12 오전 9:20:34 입력 뉴스 > 예천인터넷뉴스

신도청시대 예천의 장소성과 인문魂을 찾아서 <7>삼강촌의 풍수 문화



신도청시대 예천의 장소성과 인문
을 찾아서

<7>삼강촌의 풍수 문화

 

예천군 풍양면 삼강리가 관광 핫플레이스로 자리 잡았다. 십여 년 전 삼강주막을 복원하면서부터다. 평일에도 수백 명, 연휴 때나 주말에는 천 명이 넘는 관광객들이 삼강리를 찾는다. 국내 최고의 물돌이 마을인 회룡포와 용궁의 순댓집들이 가까이 있어 연계관광에 유리하다는 점도 한몫했다.

 

 

삼강리는 강촌(江村)이다. 산골짜기에 개울가마을(溪村)이 있고, 바닷가에 갯가마을이 있다면 강촌에는 뱃가마을이 있다. 뱃가마을은 나룻배가 건너다니는 곳에 위치한 마을이라는 뜻이다. 1:25천 지형도에 삼강교 북쪽 나루터마을이 '뱃가로 표기돼 있고, 또 예전에 삼강리 일대 주민들이 삼강주막의 주모(酒母)뱃가 할매로 부른 연유도 거기에 있다.

 

 

삼강리 대로변에 삼강문화마을이라 새겨진 커다란 입석이 있다. 아마도 2003년 농어촌공사가 실시한 문화마을 조성사업의 대상 마을로 선정되면서 그 같은 이름이 붙여진 듯하다. ‘문화마을처럼 중앙 부처의 지원사업명에 따라 수없이 많이 생겨난 지명이 바로 전원마을’, ‘정보화마을같은 보통명사를 덧붙여 쓴 마을이름들이다

 

 

그런 이름짓기는 존재의 참된 가치인 특개성(特個性)과 정체성을 무너뜨리는 행위다. 성형외과가 얼빠진 사람들을 대상으로 유명 연예인을 닮은 얼굴들을 양산하는 행위와도 같다.

 

 

필자가 삼강리’, ‘삼강마을’, ‘삼강촌’, ‘삼강문화마을’, ‘삼강뱃가마을등 다섯 가지 이름을 놓고 사람들에게 물어본 결과, ‘삼강촌(三江村)’이 가장 매력 있는 지명으로 확인됐다. 핫플레이스는 그 이름부터 어딘지 달라야 사람들에게 강하게 어필된다.

 

 

문화생태는 그것이 선진 형태든 후진 형태든 사람이 사는 곳이면 어디에라도 있는 일종의 생활양식 패턴이다. 그러기에 문화마을이나 생태마을같은 용어는 애초부터 성립될 수 없는 말들인 것이다. 더구나 삼강리는 모든 초점이 삼강주막에 맞춰져 있다.

 

 

삼강주막마을이라는 이름이 나돌 정도다. ‘선택과 집중은 지역개발의 한 효과적인 방법론이기는 하다. 그러나 삼강촌이 간직하고 있는 장소성장소혼()’삼강주막 막걸리축제너머에 있다.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거주해온 곳으로서 시대별 다양한 문화가 층층이 누적돼 있다.

 

 

지금 우리는 삼강촌을 관광지로 보지만 과거의 구석기시대 사람들과 조선조 유교 이데올로기를 하늘처럼 떠받들었던 삼강촌 청주정씨 양반들은 그곳을 이상향의 삶터로 여겼을 것이다. 필자가 주목하는 것은 삼강촌이라는 특정 장소에 배어 있는 옛 거주자들의 혼과 세계관이다. 그 때의 장소는 우리 눈에 비치는 단순한 객관적인 공간이 아니라 희로애락의 온갖 정서가 녹아 있는 감성의 공간이다.

 

 

필자가 그 유서 깊은 감성의 세계를 바탕으로 21세기 삼강촌의 대외 홍보용 슬로건 하나를 만들었다. 바로 유시유종[有始有終·알파와 오메가]의 땅, 삼강촌이다. ‘새로운 시작유종의 미를 마음속으로 다짐하거나 확인하는 명소라는 뜻을 담고 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인생 여정에서 그 어떤 일을 잘 마무리하기 위한 결심을 하거나 또는 새로운 출발을 위한 마음 다잡기가 필요할 때 누구든 삼강촌을 찾으면 장소령()이 주는 그 어떤 효험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삼강촌의 자연 풍수적 입지 과학

풍수 입지론의 거시적 판단 기준은 산, , 방위다. 지맥상에 놓인 촌락의 위치나 그를 둘러싸고 있는 수세(水勢)의 상태를 살피는 것이 산과 수라면, 그를 바탕으로 각종 시설물을 어느 쪽으로 향하도록 배치할 것인가 하는 것이 방위다. 다시 말해 지세(地勢)와 수세, 절대향(絶對向)과 상대향(相對向) 등을 종합적으로 살피는 것이 풍수 입지론이다.

 

 

삼강촌의 풍수 입지 문화는 하천변 인공제방 축조 이전과 이후로 크게 대별된다. 삼강촌은 이름 그대로 강변마을이어서 태생적으로 수세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요즘처럼 치수(治水)시설이 잘 돼 있다면 그것이 계곡물이든, 강물이든, 바닷물이든 물길과 물 흐름을 개의치 않아도 된다.

 

 

그러나 인공제방 축조와 같은 치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던 속칭 개천시절이었다면 상황은 다르다. 오죽했으면 택리지에서 큰 물가 마을은 흥망이 덧없다는 말까지 했겠는가. 삼강촌의 최초 주거지는 2015년 발굴된 구석기 유적지다.

 

마을 뒷산인 대동산 기슭 하안단구 위인데 마을 안에서도 높은 고지대다. 하안단구는 과거에 강물이 흐르면서 하천 양안에 만들어 놓은 계단상의 지형을 말한다. 그곳에서 최소 8만 년 이전부터 4만 년 전까지의 구석기 전기·중기 유물 160여 점이 발굴됐다.

 

신생대 제4기만 하더라도 4번의 빙하기와 3번의 간빙기[후빙기]가 있었으니, 대기후 변동이 한 번 있을 때마다 해수면이 대략 100m씩 오르내렸음을 감안하면 삼강촌 일대를 흐른 강물의 변화 폭도 무척 컸음을 짐작할 수 있다. 구석기인들의 주거입지 장소 선택은 두 가지 점에서 특별해 보인다.

 

하나는 그 위치가 배산임수(背山臨水)’지대여서 강에서의 어로와 산에서의 사냥[수렵]활동이 유효적절하게 병행될 수 있었다는 점이고, 또 다른 하나는 강물이 최대로 많아질 때를 대비해 그 피해를 입지 않을 만큼 충분히 높은 고지대 장소를 선택해 기거를 했다는 사실이다.

 

혹자는 또 이것을 한반도 자생(自生)풍수의 한 전형이라 할지 모르겠으나, 필자가 보기에는 그 어떤 타고난 생존 감각이 그 같은 입지 양태를 유도했을 성싶다. 경험적 풍수론에 바탕한 것이라기보다는 선험적 공간 감각에 더 의존했을 거라는 뜻이다.

 

삼강촌은 인공제방이 만들어지지 않았던 근대까지만 해도 주거시설이 강변 가까이 내려올 수 없었다. 홍수시에는 집이고 가재도구고 가릴 것 없이 모두 물에 떠내려갈 게 뻔했기 때문이었다. 1934[갑술년] 대홍수 때 일어난 마을입지 변화가 그것을 입증한다.

 

청주정씨 고가(古家)들은 지맥이 뻗어 내린 지세향을 따라 고지대에 북향집을 지은 탓에 겨울철에는 찬 강바람과 일조량 부족으로 추위에 떨어야 했지만 여름철 수해는 전혀 입지 않았다.

 

그러나 삼강나루 가까이에 있었던 보부상 숙소와 사공 숙소를 비롯한 3채의 주막은 모두 물에 떠내려가 버리고, 유일하게 남은 삼강주막도 절반 이상이 물에 잠기는 바람에 가옥이 비스듬히 기울어지게 되었다. 그래도 주막은 그 자리를 떠날 수 없었다. 주막은 옮기면 그 기능이 상실된다.

 

물을 다스리는 기술이 없었던 시대에, 그것도 세 강물이 모이는 물 터나 다름없었던 삼강변에서 제아무리 자주 물난리를 겪는다 할지라도 똑같은 자리에서 유실과 재건을 거듭할 수밖에 없었던 게 바로 삼강나루터 주막집의 숙명이었다.

 

수년 전 장마 직후에 찍은 사진을 보면 삼강물이 합수되는 장면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삼강촌 북쪽 700여 미터 지점에서 금천 물을 받아들여 세를 불린 내성천 물이 곧장 남쪽 방향으로 직진하며 삼강촌 터의 북서쪽 모서리를 칠 기세인데, 서진해 오는 낙동강물이 그 찌르는 듯한 직충수(直冲水)를 달봉산 쪽으로 밀어붙여 물목을 만들면서 삼강촌의 침식을 가로막고 있다.

 

이 경우, 물의 보호사면 쪽에 위치한 삼강촌의 입장에서는 강줄기가 금성수(金星水·環抱水·弓水)가 되지만, 물 빠짐이 느려져 그만큼 농경지 침수지대가 넓어지는 무이촌의 입장에서는 낙동강 물줄기의 역할이 오히려 반궁수(反弓水)나 다름없게 돼버린다.

 

그렇다면 강을 사이에 두고 삼강촌과 마주보고 있는 무이촌은 어떤 홍수 대비책을 세우고 있었을까. 예부터 무이촌에는 "삼강에 모랫더미가 보이면 뒷물실로 가라는 풍수 향언(folk tale)이 전해 온다. 지금은 무이제방이 잘 구축돼 무이마을 앞에 넓은 무이들판이 펼쳐져 있지만 예전의 그곳은 큰물이 질 때마다 항상 늪지대로 변하는 상습 침수지역이었다.

 

그러니까 삼강 바닥에 모래가 많이 퇴적되면 홍수시 세 물이 합쳐지는 좁은 물목인 삼강 서쪽의 물 빠짐이 원활하지 못해 마을 앞 농경지도 모래로 덮일 게 뻔하니 미리 알아서 마을 뒤쪽의 농사지을 만한 곳으로 이거(移居)하라는 얘기였던 것이다. 옛 조상들의 삶터에 대한 자연 풍수적 관찰력은 그토록 빼어난 것이었다.

 

튼튼한 인공제방이 구축된 지금 삼강촌의 토지이용은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다. 마을 동북쪽 제방 아래의 논들은 녹색문화상생벨트조성사업이라 하여 기와집과 초가집이 나란히 들어선 관광단지로 변모하고 있고, 집의 좌향도 비룡산 능선과 낙동강 줄기, 그리고 제방 둑을 뒷배 삼아 일조량이 좋은 남쪽을 향하고 있다. 예전 상습 침수지대가 옥토로 바뀌었다가 지금은 또 금쪽같은 상업지로 변모하고 있는 것이다.

 

협소한 명당판국으로 비록 넓은 농경지를 보유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삼강촌에서 쭈욱 농사를 지으며 살아온 한 촌로는 삼강촌은 살아도 고향은 사라지고 있다고 말한다. 불현듯 2005년 세상을 떠나기 직전 삼강주막의 마지막 주모가 남겼다는 말이 떠오른다.

 

"안동댐과 마을 제방이 생긴 뒤로 큰물이 진다고 해도 홍수 걱정은 안 돼 좋기는 하지만 제방이 주막 앞을 떡 막아서 있어 어찌나 답답한지. 제방이 없을 적에는 뽀얀 흰모래가 쌓여 보기에도 그렇게 이쁘더니만 제방 쌓고부터는 모래는 없고 풀피리와 쓰레기만 저래 쌓이니 우얄란고 몰라."

 

풍수무전미(風水無全美)’라는 말이 있다. ‘모든 조건을 다 완벽하게 갖춘 땅은 없다는 뜻의 풍수 금언(金言)이다. 기왕지사 인공제방 구축으로 걸핏하면 강촌마을을 울리던 수재(水災)를 피할 수 있게 되었다면 그 나머지 다소 언짢은 상황들은 마땅히 감내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삼강교와 연결된 59둑 도로가 마을을 두 동강 냈다든가, 또는 새로 만들어지고 있는 달봉교가 아름다운 삼강촌 하천 풍광을 다 버려놓는다는 등등의 얘기에 대한 그 어떤 풍수 비보책(裨補策)이 더 절실해 보인다. 사고의 전환을 위한 무슨 절묘한 방법은 없는 것일까.

 

삼강촌의 인문 풍수적 상징 미학

삼강촌의 인문 풍수는 두 가지로 대별된다. 하나는 지형 형태에 입각한 이성적 기()풍수론이요, 또 다른 하나는 문화 형태에 입각한 감성적 기풍수론이다. 전자의 아이콘은 삼산삼수(三山三水)와 행주형(行舟形) 명당이고, 후자의 아이콘은 양반 선비문화와 서민 주막문화의 명당성이다. 두 인문 풍수 모두 우리의 이성과 감성에 좋은 기운을 불어넣어 준다는 공통점이 있다.

 

삼산이수삼산삼수같은 용어가 풍수 명당을 상징하는 용어로 채택된 데는 우리 몸이 선천적으로 맑은 산수의 기운을 좋아한다는 사실과 연관돼 있다. 기 풍수론적 입장에서 볼 때 산과 물, 그리고 인체는 일종의 기물(氣物)이며, 그들은 상호 영향을 주고 있다. 서로 간에 기를 주고받는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풍수에서는, ‘산은 조종산(祖宗山)이 멀면 멀수록 좋고, 물은 수역이 넓으면 넓을수록 값지다고 해석한다. 기운은 산줄기[龍脈]과 물줄기를 따라 흐르는데 멀리서 오는 지맥과 강물일수록 그 역량이 크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온 것이 삶터에서 멀리 떨어진 명산을 외삼산(外三山)으로 끌어오는 일이었고, 또 마을 명당수의 발원지를 찾아내는 일이었다.

 

삼산삼수 명당인 삼강촌은 무려 3(三重)의 삼산 체계를 갖추고 있다. 삼강촌을 직접 둘러싸고 있는 대동산·비룡산·달봉산이 내삼산이라면, 그 바깥쪽의 문수지맥 학가산·운달지맥 대미산·보현지맥 비봉산은 삼강촌의 중삼산(中三山)이 되고, 최외곽에 놓인 뿌리가 되는 태백산·소백산·보현산은 외삼산이 된다.

 

삼강촌 앞에서 합쳐지는 물은 태백산 금대봉 너덜샘에서 오는 낙동강(유로235.6km)물과 봉화 선달산 생달샘에서 오는 내성천(109.5km), 그리고 문경 대미산 눈물샘에서 오는 금천(42.85km)물 등 세 군데 물이다. 이 세 물이 삼강촌의 내삼산과 조화롭게 어울리니 그 일대는 곧 생기가 충만한 세물머리길지가 되는 것이다.

 

두 물 사이에는 반드시 산이 있고[兩水之中必有山], 두 산 사이에는 반드시 물길이 있으며[兩山之中必有水], 뭇 산이 멈추는 곳에 혈 자리가 있고[衆山止處是眞穴], 뭇 물이 모이는 곳에 명당이 있다[衆水聚處是明堂]’는 것은 경험으로부터 나온 합리적인 풍수논리다.

 

그러나 물 많은 강촌의 실상은 어쩌다 몇 십 년만에 발생한 홍수로 집과 농토를 잃어버릴 수는 있을지언정 평소에는 자신의 삶터를 한없이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는 안정된 공간인식의 틀을 갖추는 게 필요했다. 삼강촌과 마주 보고 있는 용궁면 무이촌의 인문 풍수가 그 해답을 제공한다.

 

놀랍게도 그들이 삶터 명당성 상징어로 채택하고 있는 삼산삼수는 삼강촌이 사용하고 있는 삼산삼수의 실제 산이나 강과 동일하다. 마을 위치도 다르고, 주산의 위치도 다른데 어떻게 그런 일이 생기게 되었을까. 무이촌은 해발 100m의 나지막한 무이산을 주산(主山)으로 삼고 있다.

 

마을에서 볼 때 동남쪽으로 물이 빠져나가는 관문[水口砂·捍門] 역할을 해주는 비룡산과 달봉산, 그리고 그 너머로 수구의 공허함을 메워주며 조산(朝山) 역할을 해주는 삼강촌 뒷산[主山·대동산]이 주산보다 오히려 더 높다.

 

풍수에서는 안산이나 조산이 주산보다 높은 것은 환경심리상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무이촌 양반들은 자신들의 삶터에서 삼산삼수가 보이지 않는 것도 아니니 주산의 왜소함을 비보하는 차원에서 아예 삼산삼수를 자신들의 삶터 명당 상징어로 끌어왔던 것이다. 그 정도로 자신들의 삶터를 귀히 여겼을진대 어찌 근동에서 무이촌의 여주이씨 문중을 반촌(班村)으로 여기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항공사진에 나타나듯 지세 비보(裨補·보완)가 잘 돼 있는 현재의 삼강촌은 풍수 물형론상 행주형(行舟形)’의 모습을 띤다. 땅이 배 모양이라는 게다. 배는 사람과 물자를 실어 나르며 교역을 하기 때문에 부()를 축적하는 수단이 된다. 사방을 둘러싸고 있는 은 고전적 풍수론에서부터 재화를 상징해 왔기 때문에 부의 기운이 이중으로 겹친다.

 

원래 득수국(得水局) 터는 물가에 있어 수해를 입기 쉽지만 비보가 되면 금싸라기 같은 땅으로 바뀐다. 배는 물을 거슬러 올라간다. 삼강주막이 있는 북서쪽이 뱃머리이고 대동산이 있는 남서쪽이 배꼬리이다. 주막 앞 450년 된 회화나무는 돛대이고, 최근 많이 지어지고 있는 마을 안 초가와 기와집들은 승객과 선원들을 실을 선실이다.

 

만선(滿船)의 그날을 기약하며 굵은 계선(繫船) 밧줄 세 개로 배를 단단하게 정박시켜 놓았는데, 그것이 삼강교와 비룡교, 그리고 현재 만들어지고 있는 달봉교다. 삼강촌의 장밋빛 미래가 기대된다.

 

감성적 기풍수는 삼강촌의 양반 선비문화나 서민 주막문화를 통해 느껴볼 수 있다. 선비문화는 삼강제방 길을 따라 펼쳐지는 삼강구곡(三江九曲)’이나 삼강팔경같은 산수문화를 완상하거나 아니면 삼강강당이나 고택에 남겨진 문화를 찾아보면 되고, 주막문화는 삼강주막에 복원돼 있는 사공이나 주모와 연관된 각종 사료(史料)들을 음미해 보면 된다.

 

노암 정필규(1760~1831)의 삼강팔경은, 한 폭의 그림 같은 청산의 안개[靑山曉霧], 무지개에 걸린 듯한 백석개의 저녁연기[白石暮煙], 비단에 수놓은 듯한 마령의 봄꽃[馬嶺春花], 강물 위에 비친 두무산의 늦은 단풍[西壁晩楓], 뒷산 언덕에서 멀리 바라보는 산천[後堤遠望], 속세를 떠난 도원경 같은 산막골 산장[山洞別庄], 맑은 모래 물가에 매어놓은 배[淸沙繫舟], 동산에 떠오르는 보름달[東山望月] 등 여덟 가지를 일컫는다.

 

지금은 비록 주변 환경이 크게 변해 예전의 명미한 풍광을 즐길 수는 없지만 한 때는 마을 안 속칭 신선마[신설촌]에서 한눈에 볼 수 있는 절경들이었다고 한다.

 

삼강구곡은 동쪽의 지보면 마산리의 제1완담(浣潭)’에서 시작해 서쪽으로 낙동강을 쭉 따라 오며 각씨암(閣氏巖·쌍절암), 산막재(山幕齋), 삼호정(三湖亭), 사림(沙林), 삼강(三江), 청조(靑鳥), 백석정(白石亭), 그리고 제9곡 용담(龍潭)까지 이어진다. 팔경이 내가 구경하는 곳에서 보이는 아름다운 경관 여덟 개를 말한 것이라면, 구곡은 내가 사는 곳 근처 골짜기에서 아홉 개의 빼어난 물굽이 경관을 정한 것이다.

 

구곡은 조선중기 이후 사대부들이 경치 좋은 산수 속에 은거하면서 심신을 닦은 수양처로서 대부분 산중계곡에 있었지만, 삼강구곡의 경우는 삶터를 태극무늬로 돌고 있는 낙동강 줄기를 따라 설정됐다는 점에서 독특한 입지 패턴을 보여준다.

 

그것은 곧 삼강촌 일대의 양반들이 자신들의 삶터 자연을 선비정신을 함양하는 장소로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애지중지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향토 사랑과 장소애()의 한 전형이었던 셈이다.

 

양반문화와 서민문화의 차이점은 고풍스런 기와집과 뱃짐을 옮기는 인부들의 품값을 결정하는 들돌과 같은 데서 확연히 드러난다. 그러나 마음속에 가장 찡한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삼강주막 벽에 새겨져 있는 외상장부와 삼강강당 마루에 걸려 있는 백세청풍(百世淸風)’이라는 현판 글씨다.

 

전자는 까막눈이었던 주모가 외상으로 준 막걸리 양에 따라 벽에다 가로 세로로 그은 줄이고, 후자는 당대 초서의 대가로 알려진 청풍자 정윤목[청주정씨 삼강촌 입향조]이 중국 절강성 수양산에 있는 백이숙제의 사당인 수양사에서 탁본해 온 글씨 중 잃어버린 자를 후일 보완해 써넣어 걸어 놓은 선비의 절개를 상징하는 고필(古筆)이다.

 

외상장부는 안타까우리만큼 애잔함을 불러일으키고, 백세청풍이라는 글씨는 한 치의 막힘도 없는 힘찬 기운을 느끼게 한다. 아니, 그 글씨에서 풍겨 나오는 기상이 마치 속인의 속내를 빤히 들여다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줘 왠지 가슴이 서늘해진다. 아마도 광해군의 부름을 끝까지 거절하고 고고하게 살다간 청풍자의 혼이 그 글씨 속에 깊이 스며있기 때문이리라.

 

삼강주막과 삼강강당은 마을 안을 가로지르고 있는 59둑 도로의 서쪽과 동쪽에 분리돼 놓여 있다. 주민들은 마을 터가 두 토막 났다고 말하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오히려 둑 도로가 경계를 만들어 저절로 관광테마 구역이 조닝(zoning)화되고 있다는 느낌이다. 양반 선비문화와 서민 주막문화 구역이 적절히 구별됨으로써 각각의 장소성이 특화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관광객들도 자신의 취향에 맞는 곳을 골라 답사할 수 있는 이점이 있어 보인다는 것이다.

 

유시유종[알파와 오메가]의 땅, 삼강촌

삼강 마을 터는 천작(天作) 명당보다는 인작(人作) 명당에 더 가깝다. 그러나 인작도 백년이면 천작이 된다고 하지 않던가. 비록 사람이 만든 일이라도 백년만 가꾸어지면 하늘이 만든 것이나 다를 바 없는 것이다. 더구나 삼강촌 터가 지닌 시·공간적 함의(含意)가 마을을 넘어 경북을 지나 전국을 지향하고 있음에랴.

 

우선 그 터에는 국내 유수의 구석기 문화 유적지가 있다. 시간적으로 우리 한반도의 역사 문화가 출발한 알파(α·시작)의 땅이라고 해도 전혀 손색이 없다. 동시에 삼강촌은 우리나라 최후의 주막인 삼강주막이 남아 있었던 곳으로 유명하다. 최후는 오메가(Ω)의 땅을 의미한다. 그러나 2005년 주모의 타계로 잠시 문을 닫았던 삼강주막은 2007년 한결 일신된 모습의 테마 파크로 다시 복원됐다. 새 출발하는 알파의 주막으로 또다시 변신한 것이다.

 

삼강촌은 공간적으로도 알파의 땅인 동시에 오메가의 땅이 된다. 삼강촌은 문수지맥과 보현지맥, 그리고 운달지맥의 종착지 산인 비룡산·대동산·달봉산이 모여 있고, 내성천과 금천, 그리고 낙천(洛川:태백산 황지~삼강촌)의 종점이 되는, 이른바 삼산삼수의 끝맺음 지점촌락이다. 종점은 곧 오메가의 땅임을 상징한다.

 

그러나 세 하천의 물은 삼강촌 앞에서 곧바로 한 몸으로 섞인 후, 낙동강이라는 이름으로 새 출발한다. ‘알파의 물로 바뀌는 것이다. 성호 이익은 삼강촌 앞에서 새로 시작하는 낙동강이라는 이 알파의 강물이 부산 다대포까지 한 줄기로 흐르는 것을 보고, 경상도 땅이 물 흐름처럼 풍기(風氣)가 흩어지지 않고 모여 옛날 풍속이 그대로 남아 있고 명현도 배출되어 우리나라 인재의 보고(寶庫)가 되었다고 했다.

 

2009년 봄, 한 유력 정치인이 부인과 함께 삼강주막을 방문해 평상에 앉아 강바람을 쐬며 막걸릿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때 부인이 저 유유히 흐르는 장강처럼 인생도 그렇게 사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말했는데, 그 말을 들은 남편이 낙동강을 다시 한 번 바라봤더니 강물이 참으로 평온하게 유유히 흘러가더라고 한다.

 

그는 서울로 올라가 곧장 불출마를 선언하고 깨끗이 정계를 은퇴했는데, 이 경우는 아마도 삼강촌 자연이 지닌 오메가의 힘이 강력하게 작용했던 게 아닌가 생각된다.

 

삼강촌은 시·공간적으로 심오한 철학과 상징성이 담긴 명소다. 문화의 클라이맥스는 은유와 상징이다. ‘삼산삼수는 은유요, ‘외상장부백세청풍은 상징이다. 정신과 물질, 이성과 감성, 알파와 오메가가 무엇인지를 일깨워 주는 관광 명소 중의 명소, 그곳이 바로 삼강촌이다.

 

삶에 지친 사람은 누구든 삼강촌을 찾아 어느 한 쪽으로 기울어져버린 자신의 인생 가치관을 힐링하여 보다 건강하고 행복한 생활을 영위해 나가길 희망한다. [이몽일 경북환경연수원 객원교수·풍수학박사]

 

 

정차모 기자(jcm542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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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길어요
너무 긴글.. 2018-07-15
잘보고있습니다!
사람마다 생각하는게 다르겠지만.. 저는 잘보고 있어요~~지역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뻔한 소개글보다는 풍수와 함께 하니 더 읽기에 재밌어요! 2018-07-13
김삿갓
요즘같은 문명시대에 풍수문화 ㅋㅋㅋㅋㅋ 제발 정신차리세요, 혹세무민하지 말고 2018-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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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군8년연속농정평가수상경북최농업웅군평가!
예천군의회임시회본회의'군정질의(김학동군수답변)'
정옥례씨(쌀아지매)농식품부선정'신지식농업인' 선정!!!
관람10만2천여명농산물판매7억3천만원농산물축제성공
히말라야등반중숨진김창호대장(감천면)군민애도!
도기욱의원경북도청공무원노조뽑은BEST도의원뽑혀!
팥향이살아있는전통수제찹쌀떡전문집 만수당 오픈!
예천군체육회국장,팀장선거캠프공신(?)들입성완료!
최교일 국회의원

최교일 국회의원은 15일 오전 11시 군청 중회의실에서 수도권 이전 제..

김학동 군수

김학동 군수는 15일 오전 11시 군청 중회의실에서 수도권 이전 기업 ..

지체장애인협회 주최 '장애인&비장애인 함께하..
지보주민자치센터(위원장 임우상) '아버지 행..
재경예천군민회(회장 손경목) '2018 재경군민회..
[건강칼럼]부상을 예방하고 건강하게 요리하기
[건강칼럼]말할 수 없는 비밀? 숨길수록 깊어지..
경북도립대학교, (주)KCC '전문인력 양성 및 ..
튤립인터내셔널(주)-예천군-경상북도 등 3자간 ..
수능 대박 나세요!!! 예천교육지원청 관내 '201..
경북도 '지방세 등 고액.상습 체납자 463명 위..
예천군 '원도심 활성화 위한 한천길 주차장 조..
예천군 12월 4일까지 관내 42개소에서 '2018년..
유천면, 건설교통과, 유천농협 직원 등 40명 ..
문경소방서(서장 이진우) 윤희명 구조과장 제1..
최교일 국회의원
김학동 군수
지보초, 이동형 성교육 버스타고 생명의 신비 ..
유천초, 흡연예방 금연실천 유천 건강둥이 체..
지보중, 향긋한 꽃과 함께 플로리스트 직업 체..
나눔, 배려, 어울림 상리초 학예회 및 경로잔치..
[건강칼럼]규칙적인 생체리듬으로 가뿐한 하루..
김학동 군수 어르신 대상 '경북의 중심, 도약하..
예천군-울진군 농엽경영인회 양군의 교류와 우..
예천경찰서(서장 신동연) 대학수능시험장(예천..
저학년 방과후 돌보기 위한 '예천군공동육아나..
[훈훈한 미담]김중진 감천면장 및 직원, 농협..
예천군다문화가족지원센터&VR SKY 경북도청점과..
예천에서 인생 2막 꿈꾸는 귀농·귀촌 희망 도..
김학동 군수
도기욱 도의원
예천여중, 자유학기제 연계 선비문화 진로체험..
예천남부초, 바른 인성 함양을 위한 사과 따기..
[건강칼럼]척추 불균형, 바로잡아야 합니다. '..
[건강칼럼]시력저하에 실명까지 유발하는 포도막염
경북도의회 기획경제위원회 도기욱 도의원 '관..
청소년들의 미래 우리가 책임집니다!!! 예천경..
경북사과 홍보행사(서울시청 광장) 김학동 군수..
새마을문고 예천군지부(회장 김성심) 한도시 ..
경북도 내년도 예산 8조 6,456억원 편성. 사상 ..
[문화유산 답사기]'상상의 새 봉황(鳳凰)이 사..
K-water예천수도관리단[단장 권영태)수도관 한..
한국수력원자력(사장 정재훈) 예천읍 읍내 중..
예천군종합자원봉사센터 출동! 무조건재난지킴..
예천동부초 흡연예방 및 금연실천 작품 전시회..
지보초, 친구와 함께 떠나는 가을 나들이...
체험활동이 즐거웠어요! 풍양중 청운 학부모동..
예천군 관내 수능생 273명(대창=113명,여고=139..
군의회 임시회 끝. 이형식 의장 노인, 장애인 등..
우국 충절의 표상 '약포 정탁선생 탄신 492주년..
문경소방서(서장 이진우) 4층 대회의실에서 '제..
문 대통령 이철우 지사에게 '새마을 운동 이름..
예천군 관내 중학교 2학년 전체 대상 '영어체험..
경북도의회 안희영 도의원 행정사무감사에서 '..
김학동 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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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양초, 나눔 Day 프로젝트, 재능기부 봉사활동..
예천남부초,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 선비문..
풍양초, 전통놀이 어울림 한마당 열다
[건강칼럼]암 사망률 1위 폐암, 조기검진이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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