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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21 오전 10:34:47 입력 뉴스 > 예천인터넷뉴스

신도청시대 예천의 장소성과 인문魂을 찾아<2>신도청 봉황산 아이덴티티(상)



우리 땅에는 봉산, 황산, 비봉산, 봉미산, 명봉산 등 봉황 계열 이름을 가진 산이 많다. 마을터 발복이든 집터나 묘터 발복이든 그저 봉황 같이 빼어난 후손이 많이 태어나기를 바라는 우리 조상들의 염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봉황산과 도청 신도시 계획도로망

 

예천군 호명면 금릉리(金陵里)에 있는 봉황산도 예외는 아니다. 17세기부터 경주이씨 평리공파(評理公派) 후예들이 그 산 밑의 금릉리에서 세거해 왔는데, 그 역사지리적 장소 정체성[장소성]이 온통 봉황 계열 일색이다. , 바위, 정자, 사람 이름 등 그 어느 것 하나 봉황과 관련되지 않은 것이 없다.

 

봉황산 지형도

 

그런데 금릉1리의 대부분 땅이 2008년 경북도청 이전지로 수용되면서 그곳은 말 그대로 상전벽해가 됐다. 유서 깊던 마을 모습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동족집단의 구심점 역할을 해왔던 봉황대(鳳凰臺)라는 누정도 헐려 버렸으며, 입향조 묘소를 비롯한 선대 묘들도 하나같이 마을 밖 타지로 이장(移葬)되었다.

 

도청 신도시로 개발 중인 옛 선름마을 터(도로 개설로 잘려진 지맥의 뒤쪽)

 

주민들이 애지중지했던 마을의 좌청룡 지맥은 도로 개설로 군데군데 끊어지고, 마을의 부귀를 보장했던 노적봉 형상의 안산(案山:앞산)인 동모산(東慕山·132m)은 통째로 뭉개져 평지로 바뀌어 가고 있다. 토지 이용의 효율성 극대화라는 자본주의적 논리가 그런 개발 양태의 든든한 백이 되고 있다.

 

남서쪽에서 바라본 봉황산 전경.

 

도대체 21세기가 어떤 시대인가. 농업과 공업이 풍미하던 시대를 지나 교통통신의 발달로 국가 간 경계는 퇴색되고 세계 여러 지역 간 또는 지방 간의 직접 접촉과 교류가 빈번해지고 있는 문화의 시대, 그 중에서도 특히 아이덴티티(identity)가 지배하는 시대이다.

 

'동일성(同一性)' 또는 '정체성(正體性)'으로 번역되는 아이덴티티 개념은 본질적으로 사람과 사람, 혹은 사람과 장소 간의 상호작용으로 형성된 일종의 사회적 산물이다. '동일성'은 내부적인 '같음', '정체성'은 외부와의 '다름'을 각각 강조한다.

 

이제는 마을이나 도시도 아이덴티티가 빼어난 곳일수록 세계인의 주목을 받는다. 외국인 관광객은 차치하고서라도 도청 신도시로 이사해 오는 이주민의 입장을 고려해서라도 옛 터전의 감동 스토리들이 담긴 장소들은 마땅히 보존되어야 한다.

 

무장소성의 새 건물들을 신도시 안에 빼곡히 채워 넣은들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제아무리 도청 신도시라 할지라도 장소성을 강화하는 것이 이주민들로 하여금 진정성 있는 향토애를 가지고 오래도록 그곳에 정주하게끔 하는 방책인 거다.

 

봉황산 일대의 장소 정체성을 강화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옛 거주 역사 관련 자료들을 모아 앞으로 건립될 신도청 박물관 안에 전시하는 동시에, 그 중 장소성 홍보에 유익한 자료들은 현재도 변함없이 건재하고 있는 봉황산의 둘레길 곳곳에 글과 그림으로 전시하여 신도시 터의 '뿌리 깊은 정체성'을 알리는 것이다.

 

봉황산의 옛 아이덴티티는 버리기 아까울 정도로 너무나 빼어나다. 또 다른 하나는 예전의 금릉리 선름(仙廩)마을의 주산(主山)이었던 봉황산이 이제는 신도청 구역 안에 들어가 도청 신도시의 부주산(副主山)[주산은 검무산]이 되었으므로 마땅히 그런 공간 위상 변화에 걸맞은 새로운 장소 정체성을 수립하고 또한 거기에 부응하는 경관물을 새롭게 조성하는 것이다.

 

아이덴티티 맵: 금릉 산수도와 묘지도

예천군 호명면 봉황산은 높이 211m의 나지막한 산이다. 그 산 아래에는 조선후기 이래 경주이씨[월성이씨] 평리공파의 세거지였던 금릉리 선름마을이 있었다. 경북도청 신도시로 개발되기 전까지만 해도 그곳은 봉황산·금릉리·선름마을 같은 지리적 지명(地名) 아이덴티티에다 경주이씨 평리공파라는 사회적 동족집단 아이덴티티가 뚜렷이 드러나는 장소였다.

 

금릉산수지도

 

봉황산 일대의 장소 정체성은 평리공파 파보(派譜)에 실려 있는 두 개의 아이덴티티 맵(map), 금릉산수지도(金陵山水之圖)’와 묘지도(墓地圖)에서 잘 드러난다. 산도(山圖)라고도 부르는 이 두 그림은 특정 마을터나 묘터 주변의 산세와 수세 등을 그림으로 그려 그 공간이 풍수적으로 길지에 해당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일종의 풍수 지형도다.

 

동모산 한남공 묘지도

 

'금릉 산수도'에 나오는 봉황산과 금릉동이라는 땅이름은 이백의 시, '등금릉봉황대'에 착안한 일종의 유교 이데올로기적 지명이다. 마을 뒷산에 우뚝 솟은 큰 바위가 봉황대를 연상하게 하여 산 이름을 봉황산으로 짓고, 또 중국 봉황대가 있는 금릉의 이름을 따 금능이라 하였다는 얘기가 전해오지만 우리말 금능은 아무래도 한자어 금릉을 잘못 표기해 생긴 듯하다.

 

그림에 나타나 있듯이 봉황산 품안의 마을은 금릉동과 샛마[間村], 안선름[內仙廩]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봉황산에서 남쪽으로 뻗어 내린 좌우 지맥들이 마을터를 잘 감싸고 있다. 마을 앞으로는 산합리에서 발원해 서쪽으로 흐르는 송하천(松河川: 개천이라서 작은 점선으로 표시돼 있음:

 

선름 출신 평리공파 39세손 이상원씨는 이 개천을 송평천으로 부르는 것은 잘못이라고 함) 물길이 놓여 있어 전형적인 배산임수 지세를 띠며, 개천 너머로는 나지막한 동모산이 안산이 되어 주산격인 봉황산에 조응하니 장풍득수의 입지 조건도 충족된다.

 

동모산 묘지도의 혈()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첨지중추부사 한남(漢南) 이서봉(李瑞鳳)은 금릉리 입향조 호조정랑 송오(松五) 이백영(李白永·1622~1710)의 차남으로서 한성좌윤 송은(松隱) 이근성(李謹成·1694~1769)의 부친이기도 하다.

 

묘지도는 항상 명당 혈처(穴處)를 중심으로 주변 지세가 그려지기 때문에 실제로는 남쪽에 있는 동모산을 지도의 위쪽에 놓고 분묘의 위치를 번호를 매겨가며 상세하게 표시하고, 북쪽의 봉황산은 지도의 아래쪽에 대충 그려 놓았다.

 

족보의 앞쪽에 그런 묘지도를 싣는 이유는 조상묘의 위치 정보를 기록으로 남겨 후손들이 묘지를 잃어버리지 않게 한다는 실용적인 목적이 있다. 또한, 파조나 중흥조의 명당 묘 발복으로 인해 이만큼 후손들이 잘 살게 되었다고 하는, 즉 묘지를 매개로 한 혈족들의 문중 소속감과 일체감을 진작시켜 궁극적으로는 종족[종중]집단의 아이덴티티를 더욱 굳건히 구축하고자 하는 의도가 숨어있다.

 

경주이씨 평리공파 집성촌인 금릉리 마을 사람들은 마을에서 빤히 바라보이는 봉황산 좌청룡 맨 끝자락의 송은공 묘와, 마을 앞 동모산의 한남공 묘, 그리고 동모산 바로 남쪽 남송산(南松山)에 있었던 입향조 송오공 묘터의 발복이 생활공간인 금릉리 마을터의 명당 발복에 못지않게 자신들의 삶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고 믿어왔을 것이다.

 

그런데 마을터는 말할 것도 없고 이들 선산이 모두 도청 신도시 개발 대상지로 수용되는 바람에 입향조는 예천읍 봉덕산 자락으로, 송은공 묘는 예천군 감천면 율리로 각각 이장돼 가고, 오직 한남공 묘만 옛 마을 터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봉황산 기슭으로 옮겨지게 되었다.

 

조상 대대로 이어져 내려온 세거지의 정체성을 그 정도로 잃어버릴 지경이면 '한 가문의 장소적 뿌리가 거의 통째로 뽑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간적 요인이 장소 아이덴티티[장소성]를 만들었지만 인간적 요인에 의해 장소 아이덴티티가 없어진 것이다.

 

그런데 참으로 공교롭게도 이름자에 '봉황 봉'자가 들어있는 한남공 이서봉의 묘가 마을 앞산인 동모산에서 뒷산인 봉황산으로 옮겨지며 고향에 끝까지 남게 되었다. 과연 봉황산이 그의 유해를 떠나보내지 않으려고 보듬어 안은 것일까.

 

옛 금릉리 경주이씨 평리공파 문중은 자신들의 아이덴티티 구축의 중요한 매개물로 작용해 왔고 또 앞으로도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는 이 묘역을 과연 어떤 경관물로 단장해서 혈족의 역사지리적 정통성과 장소적 정체성을 이어나갈 것인가. 그 내용은 ()편에서 언급된다.

 

명당 아이덴티티: 우부봉귀 명당

봉황산은 예천군 일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구릉성 산지 중의 하나다. 멀리서 바라본 산체(山體)의 전체적인 형태는 반달 모양이다. 이 산이 제대로 된 지명 아이덴티티[정체성]를 갖게 된 것은 17세기 후반 평리공파 28세손 이백영이 그 산 아래로 옮겨 살면서부터다.

 

남쪽에서 바라본 옛 선름마을 모습. 봉황산 오른쪽 기슭에 봉황대가 보인다.

 

그 당시 명문가들은 대개 배산임수 지세와 넓은 농경지를 갖춘 명산 하나를 점거한 후 주변 자연경관에 귀격(貴格)의 각종 이름을 부여하면서 그곳을 세거지로 삼는 경향이 있었다.

 

반달 모양의 봉황산.

 

금릉·봉황산·간촌(間村대촌(大村선름 마을(신선이 노니는 마을) 같은 지명은 그래서 생겨났으며, 이후 평민들 사이에 한자 지명이 샛마·큰마·설늠·금능 같은 순우리말 땅이름으로 불리면서 이중·삼중 중복되는 지명이 생성되었다.

 

예전의 봉황대 모습.

 

금릉리 삶터의 풍수형국 이름도 양면성을 띠기는 마찬가지다. 예부터 '소의 형상을 한 땅에서는 부유해지고, 봉황의 형상을 한 땅에서는 귀해진다'는 '우부봉귀(牛富鳳貴)'라는 말이 전해오는데, 소와 같이 부지런하면 가난을 면할 수 있고, 청운의 꿈을 안고 공부를 하면 부유하지는 못하나 귀함을 얻을 수는 있다는 뜻이다.

 

길마형국의 서쪽[우백호] 지맥.

 

양반들의 꿈이 입신양명에 있었다면 과거시험에 응시조차 할 수 없었던 평민들은 '부자라도 되어야겠다'는 소망을 가졌을 게 뻔하지 않는가. 소와 봉황의 모양새를 동시에 갖춘 산은 거의 없지만, 봉황산 아래의 옛 선름마을은 희귀하게도 바로 그런 우부봉귀 명당이었다.

 

옛 선름마을 터에 들어선 경북개발공사 사옥.

 

봉황산을 포함한 마을 전체 지세를 봉황포란 형국으로 본 주민이 있었는가 하면, 동네 터만 부분적으로 떼어내 그것을 길마[질마]형 명당 터로 본 주민도 있었기 때문이다. 양반들이 봉귀명당설을 희구했고, 평민들이 우부명당설을 소망했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봉황산 정상에서 내려다본 깎여나간 동모산 모습.

 

지금은 도청 신도시 개발로 토지가 정리되어 옛 모습을 찾을 길이 없지만 예전의 선름마을은 소 질마[말 안장]처럼 양쪽이 높고 가운데가 옴폭 꺼진 지형 위에 동서로 두 마을이 나뉘어져 있었다. 동쪽의 봉황산 지맥은 마을의 좌청룡이라는 중차대한 의미가 부여되어 예부터 비보(裨補)숲을 조성하여 보호해 왔으며,

 

깎여 나가고 있는 동모산 모습(소나무 한 그루가 서 있는 곳).

 

마을 앞 동모산은 노적봉으로 의미 설정되어 길격(吉格)의 '소 지르메[소 질마]' 형국을 완성시켰다. 이 길마명당 경관은 소 질마 지형과 노적봉이 모두 평지로 다듬어지면서 완전히 멸실되고 말았다.

 

깎여나간 송하천[송평천]변의 동모산.

 

봉황포란 형국의 형편은 그래도 조금 나은 편이다. '금릉산수지도'를 보면 봉황산이 봉황새의 형태로 그려져 있고, 그 남쪽의 동모산은 새끼 봉황의 형태를 띠고 있음이 확연히 드러난다. 입향조 송오공은, ‘봉황산 위에 봉황이 노니 하늘이 봉의 새끼를 기르므로 내가 기뻐서 살고 있네. 영원히 장구할 만한 이곳을 즐기며 정원의 소나무와 대나무로 세상 근심을 씻으리라는 유거시(幽居詩)를 남겼다.

 

도로 개설로 끊긴 옛 선름마을의 동쪽[좌청룡] 지맥.

 

봉황의 품에 안겨 살았던 선름 주민들은 모두 떠나고, 신도시 개발로 새끼 봉황인 동모산이 허물어져 내리는 현재의 상황에서 정녕 봉황포란의 명형국지는 역사적 종말을 고하고 있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봉황산이 품고 있는 봉황알 바위[鳳卵石]가 여전히 남아 있다.

 

새로 생긴 봉황마을 전경. 뒤쪽의 문필봉은 송곡리 뒷산인 건지산이다.

 

봉란은 언젠가는 새끼 봉황으로 부화될 것이고, 그리되면 경주이씨 평리공파 명문가의 산이었던 봉황산 스토리는 신도청 시대의 위상에 걸맞은 새로운 장소 스토리로 거듭 태어날 것이다. 봉란석 얘기는 ()편에서 전개된다.

 

봉황산에서 서쪽으로 내려다본 봉황마을 전경.

 

인물 아이덴티티: 봉황대의 송은공

봉황산 정체성 스토리의 종결점은 봉황 같은 인물[사람]’이다. 입향조가 봉황 같은 후손, 신선 같은 풍모를 지닌 후손이 태어나기를 고대하며 봉황산과 선름(仙廩)마을 같은 지명들을 설정해 놓았을진대, 과연 그 소망이 이루어진 것일까.

 

경주이씨 평리공파 39세손 이상원씨가 보관하고 있는 옛 봉황대 현판.

 

입향조의 손자인 송은 이근성이 마을 뒤 봉황산 기슭에 봉황대라는 누정을 짓고 수양을 하면서 봉황 전설이 현실화된다. 산이 높아 명산인 게 아니라 신선이 깃듦으로써 명산이 된다는, 이른바 '산부재고(山不在高) 유선즉명(有仙則名)'의 논리가 봉황산에도 통하게 된 것이다.

 

금릉1리 마을회관에 걸린 봉황마을 현판.

 

송은공의 묘갈명에, '어머니 정부인 광산김씨가 꿈에 봉황이 품속으로 날아드는 태몽을 꾸고 그를 낳았는데, 용모가 비범하고 음성이 맑고 기운이 굳세며 자라나면서 재능과 기예가 무리에서 단연 뛰어나 많은 이들이 우러러보며 따랐다.(중략)

 

공의 만년에 이상한 새[神禽]가 봉황대가 있는 동산의 오동나무 가지에 와서 깃을 트니 필시 봉황새였을 것이다. 영조 45[1769]에 타계했는데 장사지내던 날 봉황이 산마루를 배회하면서 울다가 구름 속으로 사라졌으니 누정[]과 산 이름이 모두 봉황인 것이 진실로 이 때문이었다'고 적혀 있다.

 

'봉황 같은 사람'의 정체성 준거를 그런 식으로 신비화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오늘날 어떤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그의 생가터와 조상 묘터를 천하에 둘도 없는 대명당으로 미화시키는 반풍수들의 한심한 작태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 대통령이 봉황 문장(紋章)을 사용한다고 해서 그를 저절로 봉황 같은 사람으로 인정할 수는 없지 않는가.

 

공직에서 물러난 조선조 유교사회의 선비들은 대개 농사짓는 일을 겸하면서 심신을 수양하는 글공부를 했다. 왜 그랬을까. 농사는 매일 매일의 상황이 하늘의 명()인데, 그 명령에 따라 실천하고 일하는 것이 곧 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천지의 운행이 덕에 의한 것이니,

 

사람도 그 덕을 알고 순리대로 그 덕을 쌓아 가야 한다고 믿었다. 그 덕이란 하늘과 나, 내 옆의 사람과 내가 둘이 아니라 하나임을 깨달아서 그것을 실천하는 것이었다. 춘하추동의 계절 변화에 대한 깨달음이 곧 생로병사, 원형이정(元亨利貞), 인의예지와 같은 깨달음으로 승화되었던 것이다.

 

송은공을 봉황 같은 사람으로 여길 수 있는 근거는 바로 그가 금릉동에 살면서 보여준 인간미 넘치는 행태에 있다. 직접 밭을 갈면서 수신제가했음은 물론, 늘 겸손하고 걱정과 즐거움을 이웃과 함께 나누었으며, 때로는 벗과 어울려 시를 짓기도 하였으니 그 누가 공의 덕의(德義)를 우러러 사모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그는 진실로 지행합일의 진수를 보여준 신선 같은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송은공을 봉황 같은 사람으로 만드는 바탕이 되었던 당시의 금릉동 배경 환경들은 지금 어떻게 변했을까. 봉황산이라는 지명을 빼고는 모든 게 사라지거나 변질됐다. 금릉은 금능으로, 신선이 노니는 마을이라는 뜻을 지닌 선름마을 터는 행복로 00번지로 바뀌고,

 

그나마 송하천[송평천]을 경계로 위 아래로 나뉘어져 있는 길 이름마저도 '선름길이 아닌 '설늠길'로 표기되어 도무지 그런 무의미하면서도 정체성 없는 이름들이 어떻게 생기게 되었는지 한심하기 짝이 없다.

 

봉황대 누정 역시 신도시 개발로 헐려버렸는데 당시 수거돼서 보관돼 오는 봉황대 현판과 시판들을 한어리 이상원씨 댁에서 볼 수 있었다. 봉황대가 재사의 기능을 겸하고 있어 10월 시사 때는 그곳에서 망제를 지내기도 한, 평리공파 문중의 회합 장소로서도 중요한 정체성을 지닌 곳이었건만 그 또한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게다가 앞서 언급했듯이 봉황 전설의 주인공인 송은공의 묘소가 감천면 율리로 옮겨갔으니 이제 봉황 같은 인물 탄생 스토리는 이쯤에서 끝나는 듯했다. 그러던 차에 봉황산 우측[서쪽]의 긴 날개를 이루는 지맥 하나 위에 터 잡은 새 동네에 우연히 들리게 된 것은 필자로서는 큰 행운이었다.

 

마을회관에 '봉황마을'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었기 때문이다. 사연인즉, 고향 땅에서 멀리 떠나가기를 원치 않는 선름 이주민들을 위해 그곳에 마을을 열기[開基: 2012년에 터를 닦기 시작하고 2015년부터 집을 짓기 시작]로 했는데, 그때 토지이용 허가를 받기 위해 군청에 신청한 자연부락명이 '봉황마을'이었다는 거다.

 

그저 단순히 봉황산 자락에 입지하게 된 마을이라서 '봉황마을'이라고 이름 붙여졌든 아니든 봉황산의 정체성은 그렇게 지금도 이어지고 있었다. 하기야 봉황산이 저토록 시퍼렇게 살아있는데, 산 위에 새롭게 조성되고 있는 신도청 둘레길을 봉황산 스토리 전시장으로 잘 활용하고,

 

또 산 아래에 봉황과 연관된 각종 경관물을 조성해 놓는다면 도청 신도시로서도 역사성 있는 장소 아이덴티티를 구비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터이다. [이몽일 경북환경연수원 객원교수·풍수학박사]

 

 

 

정차모 기자(jcm542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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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시민
시골 병아리가 봉황이되고싶어 온갖이름에 봉황을 넣어 기원했는데 하늘이 감동하여 진짜봉황이 되게해주었더니 예전이 그립다고 봉황이 사라진다고 난리네요 지키는건 우민이요 현재의것을 발전 시키는건 신민 입니다 답답하네요 2019-05-22
김국빈
우부봉귀 형상을 갗춘 금릉리 선름마을의 정체성이 오래도록 보존되기를 빕니다 2019-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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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기욱.안희영 도의원
예천초병설유치원 해님반 인성교육, 마주이야기..
대창고(교장 정재형) ‘장계향의 음식디미방 ..
풍양초, 친구야 사랑한데이! 학교폭력 예방 캠..
경북도의회 도기욱·안희영 도의원 추석 명절 ..
[특별기고:이철우 경북도지사]동해안시대 열어..
노점과 상생하는 전통시장...상설시장 태풍에도..
예천군 함께하는 추석명절 행복나눔 행사(장소..
보문지속발전 가능협의회 안상춘 회장 및 회원..
화재진압 나선 예천소방서 소방대원들 인명 구..
눈에띄네!! 예천문화사업단 경북투어마스터 참..
'2019 예천군민대학 수료식' 개최! 교양강좌, ..
예천군 군청 공무원, 안전모니터링 봉사단 등과..
[정병기 칼럼]우리사회(학교, 사회 등) 올바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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