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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10 오후 1:24:03 입력 뉴스 > 예천인터넷뉴스

신도청시대 예천의 장소성과 인문魂을 찾아서 <3>신도청 봉황산 아이덴티티(하)



금세기에 들어와 만들어지고 있는 세종특별자치시를 비롯한 몇몇 도청 신도시들을 보면 그 아이덴티티
[identity; 정체성] 수립 전략이 무척 닮아 있음을 알 수 있다. 청사나 도서관, 심지어 님비시설의 굴뚝까지 전망대로 랜드마크화 하려 하는 등, 주로 물리적인 시설물들을 통해 신도시 아이덴티티를 정립하려 하고 있다.

 

장소의 콘텍스트를 살려 해당 장소만의 고유한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참신한 도시공간 아이덴티티 전략이 크게 부족해 보인다. 도시 공간 아이덴티티의 가치는 거주자든 관광객이든 그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이 얼마만큼 해당 장소와 효과적으로 소통하느냐, 또는 감성적인 만족감을 얻느냐에 따라서 결정된다.

 

신도청 부주산인 봉황산과 주산인 검무산 위성사진

 

아이덴티티의 유형은 무수히 많다. 역사적·사회적·문화적·생물학적·국가적·민족적 정체성부터 산··동네·도시·지방·국토 전체 등에 대한 공간 크기별 지리적 정체성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하다. 그 중에서도 필자의 관심 분야는 지리적 정체성, 달리 말해 장소 정체성[장소성]이다.

 

문수지맥 나부산 가는 길에서 바라본 봉황산(맨앞)-광석산-보문산-학가산(맨뒤)

 

그런데 특정 장소에 대한 서양 지리학(geography)과 동양 풍수학의 아이덴티티 규정 방법이 많이 다르다. 지오그래피는 객관적 과학성을, 풍수는 주관적 느낌을 강조한다. 그래서 이 둘을 모두 전공한 필자는 이성적 아이덴티티와 감성적[정서적] 아이덴티티라는 말을 비유해 즐겨 쓴다.

 

소문난 여행지를 가보면 관광안내 책자나 입간판에 인식론상 상당히 대비되는 내용들이 적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하나는 융기·침식·용식(溶蝕) 작용과 같은 지형의 형성 원인을 설명(explanation)해 놓은 지오그래피적 내용이고, 또 다른 하나는 와우산이나 거북바위처럼 지형의 모양새를 묘사(description)해 놓은 일종의 풍수 물형론적인 해석이다.

 

전자는 이성을 일깨우는 이성적(rational) 아이덴티티로서 자연과학적 정체성이라 할 수 있고, 후자는 감성을 자아내는 정서적(emotional) 아이덴티티로서 인문학적 정체성이라 할 수 있다. 지오그래피 전공자들이야 전자에 관심이 많겠지만 일반 대중들은 외려 후자에 더 솔깃해 한다.

 

예천군 호명면 경북도청 신도시 안에 있는 봉황산의 정체성도 이 두 가지 측면을 모두 살펴보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그것이 획일성보다는 다양성, 개별성보다는 융합성을 지향하는 21세기 포스트모더니즘 사회의 시대정신에 부합하기도 하거니와 무엇보다도 지오그래피적 아이덴티티와 풍수적 아이덴티티를 합친 융합적 땅 읽기가 사람들로 하여금 이성과 감성의 조화를 꾀할 수 있도록 해줘 인간성 회복은 물론, 한 걸음 더 나아가 장소마케팅에도 적잖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봉황은 용과 학이 만나 낳은 자식이다.

 

◆「용학적자(龍鶴嫡子)아이덴티티와 고학정(顧鶴亭)

동서양이 각기 다른 눈으로 산을 보게 된 것은 인식론적 차이에서 비롯되었다. 서양은 산이라는 자연을 인식 주체인 나와 떨어져 별개로 존재하는 대상물[인식 객체]로 본 반면, 동양에서는 산도 나도 모두 음양오행이라는 단일 원리 하에 실존하는 존재물이기 때문에 서로 대등한 지위를 갖고 상호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로 보았다.

 

현재까지 만들어져 있는 봉황산 둘레길. 산 남서쪽과 남동쪽에서 개설이 필요하다.

 

서양 지오그래피는 대상물인 산의 형성 원인을 융기와 침식, 화산폭발 등으로 밝히고, 산지를 높이에 따라 1,000m 이하를 저산성 산지(低山性山地), 3,000m 이하를 중산성(中山性) 산지, 3,000m를 넘는 것을 고산성(高山性) 산지로 형식적으로 분류한다.

 

봉황산 북쪽 둘레길의 출발지인 산합지(山合池)

 

그런 기준으로 봉황산(211m)의 정체성을 규정하자면 그 산은 넓은 지반이 융기작용으로 솟아오른 후 오랜 세월 차별침식을 받아 만들어진 저산성 산지가 된다. 문제는 그 같은 지오그래피적 분류 체계를 따르자면 봉황산과 그 주변 일대의 모든 산들은 동일한 생성 원인과 동일한 범주[카테고리]에 속하는, 각자의 정체성과 존재감이 뚝 떨어지는 그저 그렇고 그런 산이 되어 버린다는 것이다.

 

봉황산 둘레길의 방향 표지판

 

우리 조상들은 서양지리학적 안목으로 볼 때는 그다지 차이가 없는 그들 산 밑에 제각각 동족촌을 만들면서 봉황산 선름마을(경주이씨), 검무산(332m) 원당마을(연안이씨), 정산(293m) 가일마을(안동권씨), 태을산[죽자봉](248m) 오미마을(풍산김씨), 화산(337m) 하회마을(풍산류씨), 건지산(221m) 백송마을(진성이씨), 소요산(122m) 소산마을(안동김씨) , 개성 있고 의미 깊은 산이름과 마을이름을 지어 자존감 있는 아이덴티티를 구축했다.

 

봉황산 둘레길의 자연미

 

특히 좀 더 높은 학가산(870m)을 중조산(中祖山)으로, 각각의 마을 뒷산을 그와 연계된 소조산(소조산) 내지 주산으로 위상 관계를 설정하여 자신들의 삶터 정체성과 실존 감각을 최고로 고양시켰다. 그리고 마을끼리 교류하면서도 선의의 경쟁을 한 결과, 그 일대는 이 나라 안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훌륭한 인물들을 많이 배출한 명실상부한 삶터 대명당으로 이름을 날리게 되었던 것이다.

 

천주봉(문경)이 보인다

 

도청 신도시 개발지구로 수용되어 역사의 무대 뒤로 사라져 버린 선름과 원당마을 두 곳을 제외한 나머지 마을들은 옛 경관 보존 측면에서 다소 차이는 있지만 그래도 현재까지 여전히 건재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새마을운동의 농촌경관 개조 바람에도 끄떡없었던 하회마을이 후일 세계문화유산마을로 지정된 것은 우리들로 하여금 많은 성찰을 하게 한다.

 

봉황산 둘레길 북쪽 전망대 정자(필자 가칭 고학정)

 

봉황산에 올라 이곳저곳을 살펴보는데 미상불 이미 답사해 본 적이 있는 신도청 주변의 다른 산들과 확연한 차이가 느껴진다. 능선마루의 생김새도, 자연 식생도, 조망되는 경치도 모두 다 다르다. 서양 지리학의 임의적인 산지 정체성 분류 체계가 단지 지식을 위한 지식일 뿐이라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전망대 밑 바윗돌에 새겨져 있는 경()자 글씨

 

봉황산 북쪽 기슭에 만들어져 있는 둘레길을 돌고 돌아 나무데크 계단이 필요해 보이는 가파른 산사면을 오르자 산봉우리 위에 예천군에서 세워놓은 멋진 전망대 정자 하나가 서 있다. 그곳에서 바라보이는 검무산과 도청 신시가지, 그리고 동북쪽의 웅장한 학가산 풍광은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답다.

 

전망대에서 바라보이는 검무산과 도청신도시 아파트단지

 

그런데 정자 이름이 적힌 현판이 붙어 있지 않다. 그 순간 몇 해 전에 경북도에, 문수지맥의 학가산과 그 끝자락인 비룡산 사이에 놓인 도청 신도시 터의 풍수적 아이덴티티를 학비용가지지(鶴飛龍駕之地)’로 이름 지어 주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리고 용이 구름 속에서 학을 만나 봉황을 낳았다는 동양 고래의 용봉문화 전설까지 언뜻 뇌리를 스치니 고학정(顧鶴亭)’이라는 정자명이 단번에 지어진다.

 

풍수에서는 혈처가 위치한 산세가 자신을 낳아준 뿌리가 되는 산을 되돌아보며 터를 만들었을 경우에 회룡고조형(回龍顧祖形)’ 명당이라 일컫는다. 문수지맥상의 봉황산도 그 조종이 되는 학가산의 한 갈래이기 때문에 조상 격인 학가산을 되돌아본다는 뜻에서 고학정이라 명명했다.

 

더욱이 정자 바로 밑 바윗돌에 붉은 페인트를 입힌 ()’자가 새겨져 있어, 그 원래의 조성 의도가 만물을 존경하라는 유가 철학적 가르침에 있든, 아니면 자신이 태어난 근본이 되는 선조의 은혜에 보답하라는 보본반시(報本反始)의 뜻에 있든, ‘고학정이라는 이름과 묘한 앙상블을 이룬다.

 

용학적자명산이라는 봉황산의 이 새로운 아이덴티티는 예전에 선름 주민들이 자신들의 마을 뒷산을 봉황포란형 명산으로 생각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신도청 지구로 흡수된 봉황산이 도청 신도시의 부()주산이 되었기 때문에 고려되어야 하는 공간 스케일이 커졌을 뿐만 아니라 도도(道都) 영역의 시각적인 범위도 학가산에서 비룡산까지 넓게 확장되어 그에 걸맞은 새 아이덴티티가 필요해 필자가 인문학적으로 창조를 한 것이다.

 

북쪽의 이 정자에 고학정이라는 현판을 걸고, 봉황산의 자연지리적인 형성 과정에 대한 과학적인 설명과 더불어 용학적자라는 인문학적인 명산 정체성이 만들어진 내력을 한 번 적어 놓아 보라. 모르긴 해도 봉황산을 찾는 사람들 대부분이 그 내용을 자신의 삶과 결부시키며 이런저런 많은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더욱이 이 고학정이 작은 거인과도 같이 유서 깊고 옹골찬 봉황산 능선 위의 또 다른 두 개의 정자와 시공(時空)으로 연결돼 있음에랴.

 

◆「봉황포란(鳳凰抱卵)아이덴티티와 봉란정(鳳卵亭)

가칭 고학정에서 남쪽으로 움푹 꺼진 지를 지나 2~3분 정도 능선을 따라 오르면 희한하게 생긴 바위들이 모여 있는 안[]선름마을 뒷산 봉우리에 다다르게 된다. 경주이씨 평리공파 보첩에는 입암(立岩)으로 표기돼 있고, 주민들 사이에는 황새바우, 봉황 알 바위, [자연석] 봉황대 등으로 불리는 바로 그 잘 생긴 바위가 있는 장소다.

 

풍화에 의한 화강암의 체적 변화

 

화강암산 능선 위에 드러나 있는 그런 바위들을 지형학 학술 용어로 토르(tor)라고 한다. 토르의 형성은, 지하에서 오랜 시간동안 냉각된 화강암이 지표로 노출되는 과정에서 압력이 줄어 원래 하나로 되어 있던 암체에 수평과 수직절리가 발달하면서 시작된다.

 

토르 지형의 형성 과정

 

수직과 수평 방향의 절리들로 인해 블록모양으로 갈라진 화강암이 오랜 세월 풍화를 받으면[썩으면], 블록의 모서리 부분이 더 많이 풍화되어 가운데는 동글동글한 돌(核石, core stone)이 남고, 주변은 풍화 물질로 완전히 둘러싸이게 된다. 지하에서 일어나는 그와 같은 형식의 풍화작용을 구상풍화라고 한다.

 

봉황산 토르 지형 바위군()

 

이후 새프롤라이트(saprolite)라 불리는 이 풍화 부산물이 빗물과 지하수에 의해 모두 씻겨나가면 동글동글한 핵석만 남아 석탑처럼 쌓이게 되는데, 핵석이 주변보다 높은 곳에 위치할 경우 그것을 토르라고 부른다. 일반적으로 산지나 구릉지의 산릉부에 잘 나타나며 높이는 수 m에서 10m 정도이다.

 

봉황알 바위[황새바우 또는 (자연석)봉황대]와 필자 가칭 신선바위

 

서양에서는 토르를 계란형 둥근 돌(egg-shaped boulders)’로 부르기도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지역에 따라 돌탑, 돌알바위, 암탑(岩塔), 탑바위, 층바위, 흔들바위, 동석(動石), 호박바위 등 수많은 다른 이름으로도 불리며, 때로는 생긴 모습에 따라 부처 바위, 거북 바위, 곰 바위, 장군 바위, 신선 바위 등으로도 불린다.

 

봉황 알바위

 

토르는 설악산, 북한산, 월출산, 경주남산, 팔공산, 금정산 등 우리나라 전역에 걸쳐 있는 화강암 산의 능선에서 볼 수 있으며, 모양이 특이한 경우에는 민간신앙의 숭배 대상이 되기도 했다. 아마도 과거의 우리 사회가 분석적인 자연과학보다는 인문학적인 감성적 아이덴티티의 지배를 받은 사회였기 때문에 그런 돌 숭배신앙이 성행하게 됐을 것이다.

 

당산나무[동신목]에서 사진 왼편능선으로 오르면 소윤공 묘단-한남공 묘-봉황알 바위-연리지 닮은꼴 나무를 차례로 만날 수 있다. 이 축은 봉황산 서쪽 둘레길이자 경주이씨 평리공파의 역사지리적 세거지 정체성을 확보해 주는 안선름마을 중심 공간축이다.

 

봉황산의 토르는 봉황 알모양에서부터 흔들바위모양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모습을 띠고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봉황 알 바위[황새바우 또는 자연석 봉황대]는 몇 십 년 전까지만 해도 주민들의 기도처로 각광을 받았다고 하는데, 예전에 그 바위 북쪽 골짜기에 고방사(庫旁寺)라는 절이 있었던 것도 모두 그 토르 바위 때문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소윤공 묘단

 

현재 토르 바위군()은 소나무숲에 완전히 가려져 산 아래 마을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이재학(78) 금릉1리 노인회장의 얘기로는 과거에 산이 헐벗었을 때 동네에서 쳐다보면 황새바우가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었다고 한다.

 

동모산에서 옮겨온 한남공 이서봉 묘

 

경주이씨 평리공파 문중으로서는 안선름마을 입구의 당산나무[동신목]-소윤공 묘단[평리공파 19세로서 小派인 소윤공파 派祖]-이장된 한남공 묘-봉황 알 바위-‘연리지 닮은꼴 소나무로 이어지는 봉황산 서쪽의 이 지맥 축을 가문의 역사 공간 중심축으로 새롭게 인식 전승해 내려가 볼 법하다.

 

연리지 닮은꼴 나무

 

도청 신도시 개발로 잃어버린 지난날의 봉황산 남쪽-봉황대 건물-선름마을-동모산 축을, 세거(世居)의 원래 출발점이었던 안선름마을로 되돌아와 다시 구축해 놓는다는 문중적인 의의도 있거니와, 앞으로 경북도 공무원교육원이 마을 입구로 이전해 오면 20여분이면 정상까지 도달할 수 있는 이 둘레길 코스가 매우 인기를 끌 게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한남공 묘의 안대(案對)를 이루는 겹겹이 두른 산세

 

봉황 알 바위에서 남쪽으로 20m 떨어진 봉우리 위에 봉황산 서쪽 전망대인 봉란정을 짓고, 토르 지형의 형성 과정과, 봉황 알이 부화할 때 마을에 큰 인물이 날 것이라는 봉황산 전설을 함께 적어 놓으면 어떠랴. 그곳을 관광 명소화하기 위해서는 솔숲의 일부를 희생시켜야 하는 아픔이 따르겠지만 도청 신도시에서 자라는 어린이들에게는 그야말로 꿈의 무대가 될 수도 있지 않겠는가.

 

◆「봉래군무(鳳來群舞)아이덴티티와 삼봉정(三鳳亭영봉정(迎鳳亭)

봉란정을 지을 터에서 남동쪽으로 나 있는 능선길을 쭉 따라가면 봉황산 정상에 이른다. 그곳에서 남쪽으로 바라보이는 도청 신도시 조성구역과 그 너머로 아스라이 보이는 의성군 다인면 비봉산의 모습은 일망무제의 시원함을 제공한다. 봉황산에 조응하는 멋진 자태의 비봉산이 도청 신도시의 조산(朝山) 역할을 톡톡히 수행해 주고 있다.

 

봉황산 정상 삼봉정을 세울 자리에서 남쪽으로 바라본 풍광(오른쪽 맨 뒤가 비봉산)

 

이 공간축은 예천읍의 덕봉산과 도청 신도시의 봉황산, 그리고 다인면의 비봉산을 남북으로 잇는 축이다. 그래서 봉황산 정상에 세울 남쪽 전망대 정자의 이름을 세 봉산(鳳山)을 기린다는 뜻에서 삼봉정으로 지었다. ‘영봉정이라는 이름을 생각하기도 했지만 그것은 산 아래 경북개발공사 앞 소공원에 세울 정자명으로 사용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듯싶어 남겨 두었다.

 

봉황산 남쪽 경북개발공사 앞 인도와 소공원(필자 가칭 오죽공원)

 

봉황새가 여럿 날아들어 함께 춤을 춘다는 봉래군무명당 아이덴티티는 비단 그들 세 봉산만을 상징해서 지은 것이 아니다. 그런 시각적인 경관 측면 외에도 웅도 경북의 신도청이 개청된 이래 도청 신도시를 찾아온 수많은 인걸들과 또 앞으로도 계속 찾아올 명사들을 은유해서 지은 말이다. 예부터 봉황이 나타나면 태평성대를 이루고, 봉황산 아래에서 큰 인물이 난다는 믿음이 있어 왔지 않던가.

 

소공원의 조경나무

 

고학정이 봉황산의 과거를, 봉란정이 봉황산의 미래를 각각 상징한다면, 삼봉정은 봉황산의 현재를 상징한다. 봉황산 남쪽으로 개발 중인 신시가지와 그 너머로 조망되는 길격의 문수지맥 능선, 그리고 나부산·비봉산 같은 명산 이름이 적힌 대형 실경 사진을 삼봉정 정자 옆에 입간판으로 세워 신도청 주민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삶터가 얼마만큼 웅대한지를 현실적으로 실감하게 할 필요가 있다.

 

경상북도 개발공사 본관 앞 조경 소나무. 봉황포란형 명당의 옛 장소혼을 살리려면 아주 멋지게 생긴 큰 벽오동 나무를 심는 게 바람직하다.

 

신도청을 방문하는 이들을 봉황에 비유해 그들을 환영한다는 의미로 짓게 될 영봉정은 봉황산 남쪽의 옛 선름마을 명당 터에 자리 잡은 경북개발공사 앞 도로변 조경시설 지대에 세우는 것이 좋을 듯하다.

 

저류지를 좀 더 다듬어 봉황지(鳳凰池)로 명명하면 좋을 듯하다.

 

그곳에는 개발공사 측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소공원이 있다. 그런데 아무리 둘러봐도 벽오동나무도 없고 대나무도 보이지 않는다. 잘 생긴 키 큰 소나무를 중심으로 몇 종류의 수목들을 식재해 놓았는데 겉보기는 좋지만 장소정신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그 터에 배어 있는 수백 년 역사의 장소혼(genius loci)를 고려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봉황 먹이의 상징 멀구슬나무

 

시간의 흔적이 겹겹이 쌓여진 장소에는 독특한 정체성(identity)이 만들어진다. 장소의 정체성에 역사적 이야기가 가미되고, 삶의 흔적들이 남겨지게 되면 그 장소에는 바로 "장소의 혼"이 깃든다.

 

예전에 봉황산 밑 선름마을에 봉황대 건물이 있었는데, 그 주위에는 큰 오동나무 한 그루와 대나무 숲, 그리고 온갖 꽃나무들이 심어져 있었다. 봉황대 우측 바위 밑에는 오래된 샘이 있었는데, 마을이 처음 생겨날 때부터 동네 사람들은 그 물을 이용하였다고 한다.

 

선름마을의 그런 역사지리성을 장자(莊子)』 「추수(秋水)편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내용에 한 번 대응시켜 보자. ‘원추(鵷鶵)라는 봉황새가 남해에서 북해로 날아갈 적에 오동나무가 아니면 내려앉지 않고(非梧桐不止), 멀구슬나무 열매가 아니면 먹지 않으며(非練實不食), 단물이 나오는 샘물이 아니면 마시지 않는다(非醴泉不飮).’

 

육가시명물소(六家詩名物疏)에는 멈출()자를 깃들일()자로, ‘멀구슬나무()자를 대나무()자로 달리 표현했지만, 그 뜻하는 바는 대동소이하다. 한마디로 말해 오동[벽오동]나무는 서식처, 대나무[멀구슬나무] 열매는 먹이, 단물[예천]은 마시는 물로 형상화되어, 봉황이 깃들일 수 있는 지리적 조건을 제시하고 있는데, 예전의 선름마을은 봉황이 깃들일 그런 구비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옛 봉황대의 주인공이었던 송은공(松隱公)은 많은 이웃들로부터 봉황 같은 사람으로 칭송을 받음으로써 봉황산 삶터 명당 발복의 정점을 찍었다. 그는 틀림없이 봉황산을 마음 밖의 랜드마크가 아닌 마음속의 마인드마크로 삼았을 것이다.

 

시대정신이 바뀐 요즘 그런 인물의 출현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는 것을 필자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기왕에 그토록 빼어난 문화역사지리적 정보와 사상적 코드를 저장하고 있는 터를 사용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면 적어도 그 터의 장소 정체성을 십분 활용하는 조경 경관을 만들 생각을 한번쯤은 해 봤어야 하지 않느냐는 아쉬움이 남는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소공원 한 쪽에 봉황이 서식할 벽오동나무를 심고, 또 다른 쪽에는 봉황의 먹이를 제공할 멀구슬나무나 대나무를 심으면 된다. 맑은 샘물이 흘러 내려와 머무는 작은 저류지를 좀 더 다듬어 연못으로 만든 후 봉황지(鳳凰池)로 명명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거기에다 봉란석(鳳卵石)을 갖춘 영봉정 정자를 짓고, 봉황 조각상을 세우며, 용학봉(龍鶴鳳) 문화제까지 열면 금상첨화다.

 

이도 저도 다 하기 싫으면 소공원 이름을 오죽(梧竹)공원으로 지어 지명(地名) 비보(裨補)하기라도 하라. 그것이 봉황산 명당 터를 재사용하는데 대한 최소한의 역사지리적인 예의를 갖추는 일이다. 유의미한 풍수 비보 경관이 무의미한 형식적 조경 경관보다는 백배 천배 낫다.

 

사람답게 산다는 것은 의미로 가득 찬 세계에서 사는 것을 뜻한다. 경북도청 신도시가 진정성 있는 도시가 되려면 군데군데 배어 있는 그런 장소혼들을 절대로 간과해서는 안 된다. 백화점에 진열된 상품처럼 그저 다양한 조형물과 경관물들을 갖추고, 화랑정신과 새마을정신 같은 경북의 타장소에 뿌리를 둔 역사적인 정체성들을 끌어 모아 경북의 정체성이니 뭐니 한다고 해서 신도청으로서의 역할을 다하는 게 아니다.

 

산봉우리든 잘 지은 건물이든 신도청 주민들은 자신들의 삶터 구성 요소가 그저 외부 관광객의 눈에 비치는 것과 같이 단순히 땅 위에 세워져 있는 랜드마크 역할만 하는 차원에 머물길 원치 않는다. 자신들의 마음속에 깊이 각인될 수 있는, 고유한 장소 정체성의 미()와 격()을 갖춘 마인드마크가 되길 소망하고 있다. [이몽일 경북환경연수원 객원교수·풍수학박사]

 

 

정차모 기자(jcm542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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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군 사회적경제기업 육성 및 군민 이해돕기..
남부초등(교장 노동하) '학교 정보화 현장순회..
예성종합중기부품센터 엄희명 대표 '아름다운 ..
김학동 군수
(사)한농연 2019 제5차 이사회..가족체육대회 9..
고교 과학실서 유독물(포르말린)누출로 교사 2..
예천문화연구회 경북선비아카데미 '학봉 김성일..
경북도 추석 앞두고 벌초시 예초기 사용 조심 ..
문화공간지원사업 선정 연극 '여보 나도 할 말..
예천윈드학생오케스트라(지도교사 이승선) 대..
노후상수도 정비사업에 경북도 3천300억 원(5년..
침체된 도시 기능 회복과 활력 불어 넣을 '예천..
예천군 지방세 자동이체 신청하고 할인(1매당 5..
예천군농업기술센터(소장 최효열) '2019년 기..
예천군여성회관운영위원회(위원장 이재은) '201..
예천군 무인헬기 공동방제로 폭염 속 노동력 절..
[정병기 칼럼]문재인 정부 국민 나라에서 N포..
도내 불법투기.방치폐기물 강력 대응!! 불법폐..
도기욱 도의원
바르게살기예천군협의회 '2019 바르게살기운동..
예천군보건소(소장 윤귀희) 회복지원 프로그램..
활짝 핀 코스모스 구경오세요!! 신도시 호명초 ..
[정병기 칼럼]정부는 새해 달력 발행시 8월 29..
영남권 5개 시·도의회 '지방자치법 전부개정 ..
경상북도 한국국토정보공사와 스마트공간정보 ..
예천군 어린이급식관리지원센터 '식품 알레르기..
김학동 군수
도기욱.안희영 도의원
설렘 가득한 추석 명절 맞으세요!! 예천우체국 '..
[정병기 칼럼] 중국정부 홍콩 사태 무력진압 ..
예천군 아빠와 함께하는 행복한 기다림 '숲태교..
추석 선물 예천군이 보증하는 우수한 예천 농..
예천군 시장주변 교통체증과 보행안전 위해 '노..
예천군 '제4회 대한민국 국제 관광박람회'에서..
경북도민들 불편한 규제개혁 개선 위한 '규제개..
신풍미술관 '레지던스기획展:The Purple' 10월 ..
[훈훈한 미담]출향기업인 글로벌 인재 육성 위..
'2019 예천국제스마트폰영화제 홍보대사' 男=..
경북예천지역자활센터(센터장 서재호) 농업회..
신도청시대 예천의 장소성과 인문魂을 찾아서 ..
경북도정보화농업인 예천군지회 경북 농업인 ..
[정병기 칼럼]정부 사회불안 야기 조직폭력세력..
예천군 주민건강 보호.증진위한 '2019년 지역사..
예천군 활축제추진위원회 세계활축제의 성공개..
예천여고 2학년 김서영 학생 '제4회 전국청소..
예천군의회 8월 정기간담회! 2019년도 제2회 ..
김학동 군수
신동은 군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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