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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16 오전 10:13:56 입력 뉴스 > 예천인터넷뉴스

신도청시대 예천의 장소성과 인문魂을 찾아서 <7>수락대 토포필리아



사람은 '
공간적 동물'인 동시에 '장소적 동물'이다. 공간은 내가 마음에 두지 않을 때는 의미 없는 영역으로서 세상 어느 곳이나 모두 공간이다. 그 공간 속에서 나의 움직임이 일어나는데, 그 중에서 각별히 내가 의미를 부여해 놓고 애착을 갖는 공간이 있다. 그곳이 바로 장소다.

 

특정 장소에 대해 개인이나 집단이 갖고 있는 깊은 유대감이나 정서를 중국 태생의 미국 인문지리학자 이-푸 투안(Yi-Fu Tuan)은 토포필리아(topophilia)라고 했다. 장소를 뜻하는 희랍어 'topos'와 사랑이라는 의미의 'philia'를 합친 신조어다. 우리말로 바꾸면 '장소애(場所愛)'.

 

수락대 부근 위성사진

 

토포필리아는 인간 실존의 필수 요소다. 서양의 어떤 지리학자는 대도시에서 특별히 사랑하는 장소 없이 살아가는 현대인을 마치 좀비처럼 떠돌아다니는 삶을 살고 있다고 혹평한다. 토포필리아 애호가로서 어지간한 장소애는 아예 양에 안찼던지 그런 극단적인 막말까지 서슴없이 내뱉는다.

 

수락대 부근 지형도

 

그러나 알고 보면 소설 '만취당기'에 나오는 주인공만큼 강한 '집에 대한 애착[토포필리아]'은 아닐지라도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살고 있는 집에 대해 애정을 가지고 있다. 푸른 숲으로 둘러싸인 고즈넉한 삶터가 아닌 대도시의 거대한 인조공간 속에서도 사람들은 제 나름대로 '좌전철 우마트'와 같은 기상천외한 토포필리아를 구축하면서 자신의 삶의 무대를 의미 있는 장소로 만들고 있다.

 

왼쪽으로 석관천을 거슬러 오르면 바로 수락대 계곡이다. 오른쪽은 예천박물관이다.

 

토포필리아는 경험에 따라 끊임없이 생성되고 소멸되며 변화한다. 누구에게나 새로 이주한 거주지는 처음에는 낯설어 거의 '공간' 수준에 가깝지만 이곳저곳을 반복해 경험하다 보면 정도 붙고 마음속에 긍정적인 이미지가 차곡차곡 누적되면서 어느덧 그곳은 자신의 마음속에 기억으로 저장되는 장소로 바뀐다.

 

도로변에 세워져 있는 수락대 홍보용 전시물

 

토포필리아는 우리 눈에 비치는 외부적인 지리공간이 아니라 마음속 세계다. 사람들은 같은 장소를 다르게 느끼기도 한다. 누구는 좋아하고 누구는 싫어할 수 있다. 토포필리아[장소애]와 토포포비아(topophobia: 장소혐오). 때문에 이어령이 '한국인의 토포필리아' 운운한 것은 개별성을 무시한 섣부른 일반화에 불과하다.

 

옛 장소성을 재현해 놓은 물레방앗간

 

더구나 '배산임수'를 한국인이 지닌 토포필리아라고 하다니, 그것은 지형이지 사람의 정서를 나타내는 개념이 아니지 않는가. 토포필리아는 본질적으로 과거 지향적이다. 사람이 마음에 담았던 장소를 떠나있거나 또는 시간적으로 옛 기억을 반추할 때 자꾸만 그 장소가 눈에 선하고 그리워지게 되는데 그것이 토포필리아다.

 

옛 장소성을 물레방아 조형물로 상징화하여 만들어 놓은 현수교[출렁다리]

 

특정인이 지닌 토포필리아는 그 사람을 직접 인터뷰하여 알아볼 수 있지만 그가 남긴 시나 소설, 그림과 사진, 편지와 노래 등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확인해 볼 수도 있다. 수락대(水落臺)는 예천군 감천면 포2리에 있는 계곡 경승지다. '수락대 토포필리아'는 한마디로 사람의 마음속에 각인돼 있는 수락대에 대한 사랑이다.

 

그 사랑은 정서의 범위와 강도 등 여러 가지 측면에서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외지인으로서 몇 번 들렀다가 생긴 얕은 애정일 수도 있고, 오랜 세월 그 장소와 희로애락을 함께한 옛 거주민의 마음속에 형성돼 있는 심오한 사랑일 수도 있다. 시각적 쾌락일 수도 있고, 신체 접촉의 관능적 기쁨일 수도 있다.

 

현재 수락대 계곡에는, 원래의 자리에서 산기슭 쪽으로 물러난 지점에 복원돼 있는 수락대 건물과 조선조 유학자들이 수락대를 찬미한 한시(漢詩) 몇 편이 홍보용으로 도로변에 전시돼 있다. 그리고 예전에 그 계곡에 몇 개의 물레방앗간이 있었던 것을 회상시키기 위해[근동에서 생산된 벼를 계곡 급류를 이용한 그곳 몇 개의 물레방앗간에서 모두 다 찧었다고 함] 만들어진 전시용 인공 물레방앗간 하나와, 물레방아 조형물로 장식된 현수교[출렁다리]가 놓여 있다.

 

문제는 그런 식의 토포필리아 표현 방식이 현재의 시대정신에 어느 정도로 부합되며, 또한 그 일대의 관광 루트와 얼마만큼 연계되어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좌로는 예천충효테마공원을 개조한 예천박물관이 자리하고 있고, 우측 석관천 건너로는 예천 천문우주센터가 있어 학생들이 많이 찾는 곳임을 감안하면 수락대도 이제는 그 모습을 일신해야 할 듯하다. 과연 어떤 좋은 방법이 있을까.

 

수락대 지형학: 마음 밖의 객관적 공간 세계

토포필리아의 대상이자 바탕이 되는 세계는 인간의 외부에 놓인 가시적, 물리적 실존세계다. '수락대 토포필리아'의 배경은 우리 눈에 보이는 산과 돌과 물로 이루어져 있는 수락대의 자연환경이다. 그 자연은 사람의 힘이 아닌 자연의 힘으로 만들어졌다. 그 힘을 안다는 것은 곧 자연지형의 형성 원인을 안다는 말이 된다.

 

북쪽에서 남쪽을 향해 바라본 수락대 계곡

 

지형에 대한 지식과 토포필리아는 상호 밀접한 관계가 있다. 아름다운 지형이 만들어지게 된 원인을 모른 채 곧장 시각적으로 받아들인 풍경 이미지는 그 절경 여부에 상관없이 마음속에 그리 오래 남아있지 않는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거꾸로 말하면 지형 이름을 알고 만들어진 원인도 알면 그만큼 더 그 장소에 대한 견고한 토포필리아가 마음속에 생성된다는 뜻이 된다.

 

암반과 낙석, 그리고 석관천 물이 하나로 어우러져 절경을 이루고 있는 수락대 계곡

 

지형의 특징과 형성 원인을 밝히는 것이 서양 지리학의 지형학(geomorphology)이다. 지형학은 지형 형성의 원인을 객관적, 과학적으로 설명한다. 자연 속의 힘이 자연 지형을 만드는 과정을 원인-결과(cause and effect) 개념으로 설명한다. 사람의 주관적인 가치관은 전혀 개입되지 않는다.

 

바위 위의 작은 포트홀[돌개구멍 또는 구혈]

 

수락대 계곡은 석관천(石串川)에 있다. 석관천은 내성천의 제 1지류이자 낙동강의 제 2지류를 이루는 낙동강 수계의 지방하천이다. 영주시 봉현면 천부산에서 발원해 예천군 감천면 여러 마을을 거쳐 보문면 간방리에서 내성천에 합류한다. 총 유로연장이 18km에 달하는데 발원지에서 약 15km 되는 지점에 수락대가 위치해 있다.

 

계속되는 마식작용으로 자꾸만 커지고 있는 포트홀

 

하천의 유역 모양은 동서는 좁고 남북이 긴 장방형이며, 유역의 고도가 북쪽은 높고 남쪽이 낮아 전체적인 하천의 흐름은 남향이다. 돌로 꼬지를 한 것처럼 냇물에 디딤돌이 있어서 '석관천'이라 불리게 됐다는 설도 있지만, 그보다는 그 하천변에 있는 덕율리  '돌고지[石串]' 자연마을명에서 하천명을 따왔다거나 혹은 '이 돌 사이를 흐른다'는 뜻을 지닌 돌곶이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는 게 훨씬 더 타당성이 있어 보인다.

 

감입곡류천의 하안단구 지형 모식도

 

수락대 계곡은 오랜 세월 석관천이 화강암과 편암으로 된 지반 위를 흐르며 하방 침식을 시켜서 만든 계곡이다. 계곡 바닥에는 화강암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고 그 위로 주변 산에서 굴러 떨어진 거대한 낙석[巨礫]들이 군데군데 무리를 지어 모여 있다. 물이 돌 위를 흐르는데 돌이 물의 하각(下刻)작용으로 오랜 세월 닳아 암반 위에 여러 갈래의 물길이 나 있다. 물이 많을 때는 합쳐져 한 갈래로 흐르지만 물이 적을 때는 나뉘어져 따로 흐른다.

 

일명 목욕탕 바위로 불리는 대형 포트홀

 

강바닥 암반 위에는 크고 작은 수많은 포트홀(pothole)이 발달해 있다. '강바닥에 생긴 요지(凹地)'를 뜻하는 포트홀은 일명 구혈(甌穴: 사발 모양 구멍) 또는 돌개구멍이라 불리는 하천 소지형이다. 암반에 생긴 작은 틈에 모래와 자갈이 들어가 마치 맷돌이 돌 듯 오랫동안 빙빙 돌며 마식(磨蝕, abrasion)작용을 일으켜 생긴 지형이다. 암반 하상에는 '목욕탕 바위'라 일컬어질 정도로 크게 움푹 파인 포트홀도 있다.

 

물의 하각(下刻)작용으로 오랜 세월 닳아 암반 위에 여러 갈래의 물길이 나 있다.

 

동쪽과 서쪽으로 놓인 150~200m 내외의 나지막한 구릉성 산지 기슭에는 하안단구 지형이 발달해 수락대 계곡의 역사를 말해준다. 하안단구 지형은 주로 산지 골짜기를 흐르는 감입곡류천 변에 나타나는데, 땅이 솟아오르거나[융기] 또는 해수면이 내려갈 때[빙하기] 침식기준면이 변화해서 만들어지는 지형이다. 수락대 앞을 지나는 도로가 곧 최고위 하안단구면()이다

 

수락대는 자연경관이 아름다운 경승지여서 예전에는 많은 선비들이 즐겨 찾던 곳이었다. 현대에 와서는 인근 학교 학생들의 소풍 장소나 자연관찰 학습 장소로 많이 이용되었지만 지금은 폐교가 늘어나면서 그마저도 뜸한 실정이다.

 

포트홀이니 감입곡류천이니 하안단구니 하면서 하천지형을 답사하고, 피라미니 메기니 꺽지니 하면서 생태환경을 학습하고, 거기에다 글짓기와 그림그리기 등을 병행할 수 있는 천혜의 학습장인데, 방학을 맞았는데도 수락대 계곡은 절간처럼 조용하기만 하다.

 

정감어린 수락대 토포필리아를 심어주기 위한 자연과 인문, 이성과 감성, 상상과 체험을 조화시킨 장소화 전략이 필요해 보인다. 우리가 수락대의 자연경관을 넘어 그곳을 사랑의 눈으로 바라본 사람의 마음속 토포필리아 세계로 들어가 봐야 하는 이유다.

 

수락대에 대한 관념적 토포필리아: 마음속 주관적 장소 세계 I

토포필리아는 지형처럼 우리 몸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속에 있다. '장소애'란 특정인의 마음속에 각인된 긍정적 장소 이미지다. 수락대에 대한 마음속 토포필리아는 크게 두 가지 형태로 나누어진다.

 

20019월 예전 위치에서 뒤쪽[산기슭]으로 더 물러나 새로 세워진 수락대

 

하나는 타지 거주자가 일시적으로 그곳을 방문해 장소에 대한 느낌을 글로 남겨 놓은 관념적 토포필리아이고, 또 다른 하나는 오랜 세월 그곳에 거주하면서 수락대의 자연과 상호교감한 사람의 마음속에 심어져 있는 감성적 토포필리아다.

 

유학자의 관념적 토포필리아를 나타낸 한시. 방촉(芳躅)자가 으로 잘못 표기돼 있다.

 

수락대에 가보면 조선후기 그곳을 찾았던 유학자들의 한시(漢詩)가 몇 편 전시돼 있다. 관념적 토포필리아의 한 전형이다. 필자가 그것을 관념적 토포필리아로 단정하는 이유는 그 시구에서 풍기는 이적(理的), 정신적, 형식적 유교 색채와 감성을 압도하는 이성적 토포필리아 표현 방법 때문이다.

 

서애 류성룡이 눈발[飛雪] 같다고 표현한 수락대의 물보라

 

관념이라는 것은 특정인의 마음속에 이미 형성돼 있는 주관적 가치관, 즉 '색안경'이다. 예컨대 같은 '물'을 놓고도 유가(儒家)에서는 '출렁이는 큰 물결부터 보라[觀瀾]'고 하고, 불가(佛家)에서는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山是山水是水)'고 하면서 존재의 본질을 깨닫기를 요구하며, 도가(道家)에서는 '상선약수(上善若水)'라 하여 물이 지닌 도덕성을 보라고 하고, 지가(地家)에서는 '물은 재화'를 상징하기 때문에 어떤 터를 잡든 물길을 최우선해 살펴봐야 한다고 제각각 강조한다.

 

1760년에 지역유림들이 새긴 서애선생장구지소암각자. 수락대 정자는 원래 이 바위 위에 세워져 있었다.

 

실상이 그러하니 산수를 바라보는 유학자의 눈인들 어찌 정형화[패턴화:관념화]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그들은 주로 자신의 삶과 인생을 자연에 빗대거나 상징화하며, 스승이나 선인들의 유촉지를 돌며 그 자취를 추모하며 닮고자 했다. 때문에 그들이 남긴 글에 나타나는 토포필리아는 순수하게 장소에 몰입해 정서를 교감하는 현지 주민의 '진정한 토포필리아'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장소사랑일 수밖에 없었다.

 

권위(1762~1835)가 새긴 수락대암각자

 

어쨌든 1602년에 서애 류성룡이 제자들과 함께 단산 땅을 유람한 후 귀향길에 수락대에 들러 "찬 물방울이 흩어져 떨어지는 것이 마치 맑은 날에 눈이 흩날리는 것 같다[寒淙散落 白日飛雪]" 극찬하면서부터 수락대 계곡은 일약 영남 북부지방의 탐방 명소로 급부상하게 된다.  '땅은 사람으로 인해 유명세를 얻게 된다[地勝由人]'는 철리가 수락대 공간에도 통하게 됐던 것이다.

 

조봉원(1855~1933)이 새긴 수락동천암각자

 

수락대 앞 바윗돌에 새겨져 있는 각자(刻字)만 봐도 수락대의 과거 위상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서애선생장구지소(西厓先生杖屨之所)'1760년에 지역 유림에서 음각한 것이고, '수락대'는 석와 권위(權褘, 1762~1835)가 새긴 것이며, '수락동천' 네 글자는 방산 조봉원(趙鳳遠, 1855~1933)이 새겨놓은 것이다.

 

권방(1740~1808)이 경영했던 수락대구곡 위치도. 8곡이 수락대다.

 

1661년에 서애의 제자 학사 김응조(金應祖, 1587~1667)가 중심이 되어 선유록(仙遊錄)에 등재된 25인이 '선유계회(仙遊契會)'를 만들어 수락대에서 소요한 후, 그 전통은 19913감림총록(甘林叢錄) 수락대가 출간되기까지 무려 330년간 지속됐다. 그뿐 아니다. 학림 권방(權訪, 1740~1808)과 사물재 송상천(宋相天, 1766~1804)은 '수락대구곡' 원림을 직접 경영했으며, 석와 권위와 더불어 세 사람이 모두 '수락대구곡시'를 남겼다.

 

권방이 남긴 수락대구곡시 중 제8곡에 해당하는  '수락대'를 한 번 살펴보자. 팔곡이라 수락대 바위가 정면에서 열리고(八曲臺巖正面開) / 마른 우레 날리는 눈발이 함께 휘어도네(晴雷飛雪共旋洄) / 전현이 남기신 자취 지금 누가 이어가나(前賢芳躅今誰繼) / 때때로 한가한 구름만 스스로 오고 가네(時有閒雲自去來).

 

서애 사후 근 2백년이 지난 후에 지어진 시인데도 서애가 말한 '비설(飛雪)’'라는 말이 다시 원용된다. 앞서 얘기했듯 그 눈발은 실제 눈이 아니라 수락대 계곡을 흐르는 물이 떨어지면서[水落] 생기는 하얀 물보라다. 그리고 '마른 우레'는 우렁차게 들리는 물소리다.

 

같은 장면을 조보양(趙普陽, 1709~1788), ‘수락대는 하천에 큰 돌이 가로 놓여 물 흐름을 방해하니 수면이 평평하여 위는 높고 아래는 낮아 흡사 강판 같아서 물이 돌 위로 흐르는 것이 건령수(建瓴水) 같으나 폭포는 아니다. 돌 빛이 깨끗하고 희며 윤택해 한 점의 티끌도 없다.

 

한번 그 지경에 들어가 보면 신선이 사는 곳에 온 듯하다. 흰 물결이 비단 같고 바람소리와 물소리가 조화를 이루어 악기를 연주하는 듯하며, 맑고 쟁쟁한 것은 패물(佩物)을 찬 소리 같고, 시끄러운 소리는 종()과 경()을 울리는 듯하니 이것이 더욱 수락대의 명승이다라고 표현했다.

 

수락대를 찾은 선비들은 시대를 불문하고 그곳 산수를 성정(性情)을 도야하는 수단으로 삼았다. 수락대의 깨끗한 물로 마음을 씻고[洗心], 우렁찬 물소리로 귀를 씻고자[洗耳] 했다. 남명 조식(曺植, 1501~1572)이 말한, '물을 보고 산을 보고, 그리고 역사 속의 고인을 보고 그들이 살던 세상을 보라(看水看山 看人看世)'는 금언을 그대로 현실세계에서 실천하고자 했다. 일종의 유교식 산수독법(讀法)이다.

 

필자가 유학자들의 그런 관념적 산수관을 익히 알고 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수락대 길가에 전시돼 있는 김응조와 홍여하가 지은 한시를 읽어봐도 별로 감흥이 일지 않는다. 선비라면 으레 수락대가 아닌 그 어떤 곳에 가더라도 그런 식으로 유교식 문법에 맞춰 비슷비슷한 글을 쓸 것 같기에 오히려 '진정한 수락대 토포필리아'에 대한 갈증만 더해질 뿐이다.

 

물론 그곳에 터를 잡아 직접 산 것도 아니고 몇 년에 어쩌다 한 번 모임이 열리면 그곳을 방문했을 것인즉 선비들의 그 같은 형식적인 장소애 정도라도 감지덕지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수백 년 동안 숱한 선비들이 수락대를 다녀갔건만 그것을 품은 뒷산(해발고도 175m) 이름조차 하나 지어놓지 않았다는 것은 그들이 과연 진솔한 마음을 가지고 수락대를 찾았을까 하는 의구심을 갖게 만든다.

 

1773년에 조보양이 찬한 '수락대기(水落臺記)'에 나오는 '계산(溪山)'만 해도 그렇다. 기문에서는 일반명사로 사용되었지만 필자의 생각으로는 수락대의 장소 정체성을 한껏 고양시켜 줄 수 있는 뒷산 고유명사 이름으로 사용해도 전혀 손색이 없어 보인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수락대의 밝은 미래를 위해서라도 부디 '계산 수락대'로 명명되는 길이 열리길 바란다.

 

구곡·동천·선유록 같은 용어는 유자들 간에 통용되는 관념적인 개념에 불과하지만 '계산' 같은 산이름은 만인에게 통용되는 불멸의 장소 정체성 지명이다. 관념적 개념이나 이데올로기는 시대정신이 바뀌면 그야말로 별 볼일 없게 된다. 필자가 옛 선비들의 수락대에 대한 관념적 토포필리아를 넘어 그 장소에 대한 '진정한 토포필리아'의 세계를 찾아 나선 까닭이다.

 

수락대에 대한 감성적 토포필리아: 마음속 주관적 장소 세계 II

수락대에 대한 '진정한 토포필리아'는 어릴 적 그 부근 시골에서 자라나 성인이 되어 도회지로 이주한 사람의 마음속에 내재해 있을 가능성이 크다. 어릴 때일수록 관념에 적게 물들어 그만큼 수락대의 자연과 순수한 교감을 했을 수 있고, 또한 시골환경과는 사뭇 다른 각박한 도시생활을 오래하다 보면 아름다운 추억이 서려 있는 고향 땅이 더욱 사무치게 그리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남쪽에서 북쪽을 향해 바라본 수락대 경역. 왼쪽이 서쪽이고 오른쪽이 동쪽이다.

 

필자의 그런 예상은 적중했다. 수락대 인근 덕율초등학교 출신자 중에 그곳을 놀이터 삼아 자라난 사람들이 여럿 있었는데, 그곳에 소풍을 가기도 하고, 자연 관찰을 하러 가기도 하고, 멱을 감으러 가기도 해서 그 누구보다도 수락대에 대해 깊은 애정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 장소애가 바로 현지에 직접 거주해 본 사람의 마음속에 심어져 있는 '진정한 토포필리아'.

 

북쪽에서 남쪽을 향해 바라본 수락대 계곡

 

그 토포필리아는 앞에서 살펴본 유학자들의 '관념적인 토포필리아'와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이적(理的)이기보다는 기적(氣的)이고, 정신적이기보다는 신체적이고, 이성적이기보다는 감성적이고, 형식적이기보다는 실용적이고, 관념적이기보다는 본능적이다. 그야말로 21세기 포스트모더니즘 사회에 딱 들어맞는 장소애가 바로 그 진정성 있는 '감성적 토포필리아'.

 

수락대 계곡의 서쪽 오솔길

 

수락대 경역은 석관천을 경계로 크게 동쪽과 서쪽, 남쪽과 북쪽 등 네 개 영역으로 나누어진다. 동쪽 기슭에는 수락대가 위치해 석관천의 바위와 물을 내려다보고 있고, 서쪽 기슭에는 아직 아무런 시설이 돼 있지 않지만 그래도 관광객이 다니는 데는 불편함이 없도록 오솔길은 다듬어져 있다.

 

서쪽에서 동쪽을 향해 바라본 수락대의 동-서 방향 중심축. 바로 앞이 전망대 바위이고, 물 건너 나무 바로 뒤쪽 바위가 수락대수락동천이 각자돼 있는 바위, 그 오른쪽이 서애선생장구지소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는 바위로서 예전에 정자가 세워져 있던 곳이다.

 

조선조 내내 동쪽 기슭에서 선비들이 관념적 토포필리아를 만들어왔다고 한다면, 서쪽 기슭에서는 지난 몇 십 년 동안 덕율리 꼬맹이들이 쉴 새 없이 드나들면서 순수하면서도 진정한 토포필리아를 구축했다. 바위마다 개성 있는 이름을 붙이고 계곡 안 이곳저곳의 특징들을 보이는 대로 이미지화해 마음에 담았다.

 

물고기를 잡아 매운탕을 끓여 먹던 곳이라 해서 이름 붙여진 매운탕 바위

 

그 결과 몇 십 년 만에 수락대를 다시 찾은 그들의 눈에는, 전망대 바위, 촛대 바위, 탈의실 바위, 목욕탕 바위, 미끄럼틀 바위, 매운탕 바위 등과 같은 각양각색의 바위들이 여전히 저마다 존재감을 뽐내고 있고, 수심이 얕아 어린이들이 목욕하는 장소였다는 북쪽의 작은 보()와 어른들이 주로 이용했다는 남쪽 바위 밑의 깊은 물웅덩이도 변함없이 물 깊이 차이를 보이고 있음이 한눈에 비춰지는 것이었다.

 

촛대바위

 

석관천 냇물 소용돌이가 일어나는 위험한 곳과 고기가 많이 잡히는 바위 밑 굴속 같은 곳이 따로 있었고, 그때 누가 물에 빠졌는데 건져줬다고 하는 등 수많은 장소 경험 스토리들이 대화 속에서 거침없이 쏟아져 나온다. 기억의 또 다른 구성 요소인 인물이나 사건 등이 그 배경 무대가 되는 장소와 함께 할 때 그 기억이 오래 갈 수 있고 또 의미 있는 추억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이 재확인되는 순간이었다.

 

목욕탕 바위. 들어가면 가슴까지 아늑하게 잠긴다.

 

수락대의 본령인 '물 떨어지는[수락]' 바위 이야기에서 그들의 마음속에 있는 '진정한 토포필리아'는 절정에 달했다. 그곳은 일찍이 서애 선생이 '물보라가 마치 눈발이 흩날리는 것[飛雪]과도 같다고 한 바로 그 현장이다.

 

탈의실 바위. 젖은 옷을 바위 위에 올려놓으면 금방 말랐다고 한다.

 

그런데 "저 물밑 바위가 언뜻 보면 낮게 보이지만 실제로는 높이가 3m가량 되는 곳으로서 제법 낙차가 있어 해지는 줄 모르고 물미끄럼을 타고 놀았는데, 강을 거슬러 오르는 많은 물고기들이 수면 위로 함께 뛰어 올라 훨씬 더 흥겨웠다"고 별일 아닌 듯 술회한다. 누가 그 '()'적인 교감으로 이루어진 순수한 수락대 토포필리아를 욕할 수 있으리오. 누가 그 '몸'으로 직접 부딪치며 신체 안에 저장해 놓은 진정성 있는 토포필리아를 폄하할 수 있으리오.

 

미끄럼틀 바위. 서애 선생이 물이 떨어지면서[水落] 생기는 물보라를 눈발[飛雪] 같다고 관념적으로 묘사한 그 현장을 덕율리 꼬맹이들은 여름 내내 물고기와 함께 ()’를 몸으로 직접 체험하는 장소로 활용했다.

 

예전에 퇴계 선생 앞에 소낙비를 흠뻑 맞은 젊은 선비 두 명이 찾아왔는데 하인을 보내 동정을 살펴보니 한 사람은 겉옷을 벗어 쥐어 짠 후 말리고 있는데, 또 한사람은 젖은 갓도 벗지 않은 채 방바닥에 물이 뚝뚝 떨어지는데도 선비답게(?) 꼿꼿하게 앉아 있었다는 거다. 억지로 비유하자면 전자는 감성적 토포필리아이고, 후자는 관념적 토포필리아에 해당한다. 퇴계 선생이 누구를 제자로 삼았을지는 독자의 판단에 맡긴다.

 

남근석 바위

 

수락대 계곡이 예전의 모습을 잃어버린 데 대해서는 모두가 애석해 한다. 전에는 '서애선생장구지소'라고 새겨진 바위 위에 수락대 정자가 얹혀 있어서 목욕하다가 쳐다보면 물과 어우러진 그 맵시가 거의 선경을 방불케 했다는 것이다.

 

전망대 바위와 그 뒤쪽의 촛대 바위

 

그런데 19767월에 폭우로 무너진 후 2001년에 지금처럼 길 뒤쪽으로 물러나 새로 지어지고부터는 영 볼품이 없게 됐다고 한숨짓는다. 워낙 수락대에 대한 좋은 추억과 유대감을 갖고 있어서인지는 몰라도 말을 하는 눈길에서 진한 애틋함이 묻어난다.

 

물고기가 많이 모여 있는 곳이라는 촛대 바위 밑의 동굴

 

기왕에 생활하수와 축산폐수 등으로 물이 탁해져 더 이상 목욕하는 장소로 활용하기도 어렵고, 또 불과 몇 백 미터 거리에 예천천문우주센터와 예천박물관이 있어서 학생들이 많이 찾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수락대의 장소 정체성을 그쪽에 맞춰 강화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필자가 얘기하자 모두들 맞장구를 치며 좋아한다.

 

누구나 위험한 곳으로 인식했다는 바위틈 물 소용돌이 지점

 

그 방법은 간단하다. 수락대 맞은편 오솔길에 나무데크를 설치하고 군데군데 전망대와 쉼터 의자를 만들어 놓는 거다. 서양식 하천지형 명칭과 옛 석율리 어린이들이 명명한 온갖 바윗돌 이름들을 함께 적시하고 그 해설문과 사진들을 안내 입간판으로 세워 놓는 거다. 다양한 물고기 그림과 폐교된 예전의 석율초등생들이 남긴 시와 그림도 덧붙여 그곳을 훌륭한 지질 및 생태 답사지로 변모시켜 놓는 거다.

 

어린이들이 안전하게 수영했다는 계곡 상류의 보()와 너럭바위

 

그리되면 수락대 계곡의 동쪽은 유서 깊은 수락대가 인문의 향기를 풍기고, 서쪽은 미래지향적인 환경탐사 전망대가 강렬하면서도 꾸밈없는 토포필리아의 세계를 제공해 주게 된다. 그곳을 찾는 학생들에게 동쪽에서는 향토 인물을 스토리텔링해 웅지를 심어 주고, 서쪽에서는 살아 숨 쉬는 자연을 스토리텔링해 감성을 불어넣어 주면 된다.

 

하류의 수심이 깊은 곳은 주로 어른들이 목욕하는 장소였다고 한다.

 

현대와 같이 장소성이 약화된 우리네 삶터 문화 조건 속에서 수락대는 이성과 감성의 균형을 맞추는 중요한 역할을 해낼 수 있는 곳이다. 청소년들의 마음속에서 자꾸만 희석돼 가고 있는 장소 감각과 인문 정서, 그리고 토포필리아 정신을 수락대에서 되살릴 수 있게 하라. 그곳에서 자연과학적인 원리와 인문학적인 창의 정신을 융합해 힘찬 미래를 꿈꿀 수 있게 하라. '계산 수락대'의 환골탈태를 기원한다. [이몽일 경북환경연수원 객원교수·풍수학박사]

 

 

 

정차모 기자(jcm542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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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국빈
고향예천군의지리적특성을과학적으로고찰분석연재해주시는박사님께거듭감사드립니다. 고향사랑에대한뿌듯함을느낍니다. 2019-08-16
수락대
글 잘 읽었습니다 글의 내용중에 남근석 바위라고 칭하신것은 아주 근래에 생긴 것입니다 없던 돌이 왜 거기에 서있게 되었는지는 알수없으나 수락대 앞 석관천에 남근석은 따로 있습니다 2019-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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