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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19 오전 10:40:38 입력 뉴스 > 예천인터넷뉴스

[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 제40화]'애꾸눈 고양이'



변 생원, 텃세에 못 이겨 마을 떠나자 집집이 줄초상 치르기 시작하는데풍산의 풍실은 풍산개 골짜기다. 집집이 풍산개를 키우지 않는 집이 없었다. 풍산개는 원래 고구려 왕실과 귀족들 만 키우던 개다. 나라가 망하고 나서 민가로 흘러나왔지 만 손이 귀한 혈통인지 널리 퍼지지 못하고 풍산 고을에서 만 명맥을 이어가고 있었다. 풍산에서도 풍실은 이름 그대로 풍산개가 자손을 잘 퍼뜨리는 명당이다.

 

 

풍실에 변 생원이라는 한쪽 다리가 불편한 이가 이사를 왔다. 마을 어귀에 들어서자마자 도둑떼가 들어온 듯 온 마을의 풍산개들이 일제히 짖어댔다. 달구지에 싣고 온 볼품없는 이삿짐 위 엎어 실은 솥 위에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옹크리고 앉아 너희는 짖으라는 듯 눈을 감고 미동도 하지 않았다.

 

초가삼간에 산자락 밭 몇 뙈기를 마련해서 풍실에 똬리를 튼 변 생원네는 첫날부터 풍산개들의 텃세를 받기 시작했다. 며칠 후엔 동네 노인네들이 찾아와 다짜고짜 검은 고양이를 없애라는 것이었다. 사실 노인들이 주장하는 것도 일리가 있는 게 그 순간에도 동네 풍산개들이 하도 짖어 서로 말소리도 들리지 않을 지경 이었다. 변 생원은 앞이 캄캄했다.

 

애꾸눈 검은 고양이를 도저히 버릴 수 없는 사연이 있었다. 몇 년 전, 길을 가던 변 생원이 길섶에서 다 죽어가던 갓 태어난 검은 고양이 한 마리를 주워다 길렀더니 이놈이 변 생원에게서 떨어질 줄 몰라 들에 갈 때도, 장에 갈 때도 어디든지 따라다녔다. 한해 전 장마 때였다.

 

밤새도록 퍼붓던 비가 동이 트도록 퍼부어댔다. 변 생원이 도롱이를 덮어쓰고 삽을 들고 논물을 보러 가는데 그 빗속에도 검은 고양이는 뒤따랐다. 흙탕물이 뒤엉키며 굽이치는 개울을 건너려고 다리에 오르려는데 검은 고양이가 펄쩍 뛰어 허벅지 바짓가랑이에 매달려 발버둥을 치자 흠뻑 젖은 바지가 부욱 찢어졌다.

 

발로 차자 또다시 뛰어올라 가슴팍에 매달리다가 삽을 쥔 손등을 할퀴어 피가 났다. 변 생원이 이놈이 미쳤구나!” 하며 삽을 휘두르자 고양이 가 풀숲에 처박혀 유혈이 낭자했다. 바로 그때였다. ‘삐걱~’ 교각이 주저앉으며 다리가 무너져 흙탕물 속으로 사라졌다.

 

흑쇠야~” 변 생원은 울부짖으며 축 늘어진 검은 고양이를 안았다. 검은 고양이 흑쇠는 다행히 죽지는 않고 애꾸가 되었다. 변 생원은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흑쇠를 자식처럼 아껴 왔는데 그를 버리라니! 풍산개들은 변 생원 집을 둘러싸고 밤낮없이 짖어대고 동네 노인들은 날만 새면 찾아와 삿대질해댔다. 변 생원을 풍실에서 쫓아내려는 시도는 고양이와 풍산개 때문만이 아니었다. 풍실은 양반촌인데 쌍것이 들어와 섞였다는 것이다. 젊은 것들이 갓을 썼다 고 변 생원에게 하대하고 서당 다니는 아이들조차 반말을 찍찍 갈겼다.

 

이래저래 시달리던 변 생원은 마침내 뒷산 너머로 또다시 이사를 했다. 그곳에는 드문드문 열댓 집이 살았지만, 풍산개는 없었다. 주로 풍실에서 머슴을 하거나 찬모를 하는 등 천민들이 어울려 사는 민촌이었다. 변 생원은 바탕이 착한 사람이라 산 너머 동네 민촌 사람들과 잘 어울렸다.

 

암고양이 흑쇠가 나이를 먹더니 암내를 내뿜기 시작했다. 들고양이 수놈과 눈이 맞았다. 새까만 고양이 새끼 다섯 마리를 순산했다. 변 생원은 시집간 딸의 외손자를 본 듯 기뻤다. 풍산개에 밀려 고양이가 귀한 곳이라 민촌 사람 들이 시시때때로 구경왔다. 풍실에 집집이 풍산개를 키우듯이 뒷산 너머 민촌에선 집집이 흑쇠 자손 검은 고양이를 키우지 않는 집이 없었다.

 

흉흉한 소문이 돌았다. 이웃 고을에 괴질이 퍼져 멀쩡하던 사람들이 죽어간다는 것이다. 풍실 노인들은 우리는 걱정할 것 없어. 풍산개는 영물이야. 액이 들어올 수가 없어!”라고 큰소리쳤다. 웬걸, 유 초시가 드러누웠다. 사타구니와 겨드랑이에 가래톳이 생기며 극심한 통증과 함께 몸이 펄펄 끓었다.

 

의원을 부르고 진맥을 하고 탕제를 달일 여유도 없이 피를 토하고 삼사일 만에 온몸이 시커메 져 이승을 하직했다. 유 초시와 그렇게 친하던 노인네들 이 빈소에 문상도 오지 않았다. 그들도 드러누웠다. 노인들뿐만이 아니었다. 젊은이와 아녀자들도 추풍낙엽처럼 속절없이 쓰러졌다. 뿐인가. 액을 쫓아낸다던 풍산개도 피를 토하며 죽었다. 살아 있는 사람들은 양식을 싸들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풍실이 유령마을이 되었다. 풍실의 양반들은 도망을 가도 산 너머 민촌에는 가지 않았다. 천민들이 사는 민촌은 보나마나 불결한 데다 괴질이 들어왔던 길목이라 생각한 풍실의 양반님들은 민촌 반대쪽으로만 달아났다. 천민들이 사는 민촌에선 단 한사람도 괴질에 걸리지 않았다. 어째서? 나중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그 괴질의 원흉은 쥐에 기생하는 쥐벼룩이었다.

 

조주청(45년생) 작가는 안동시에서 출생. 연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 안동에서 호텔을 운영하다가 1981년 조선일보의 레저잡지 월간 산에 독자만화 투고를 통해 만화가로 데뷔하였습니다. 풍자적이고 익살스런 그림체가 인상적이며 월간조선에 경제만평을 연재.

 

 

 

정차모 기자(jcm542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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