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의 자한 편에 '세한연후 지송백지후조야(歲寒然後 知松柏之後凋也)'라는 것은 '추운 겨울이 와야 소나무와 잣나무의 푸름을 안다'는 말이다. 지조와 의리를 뜻하는 '세한송백'(歲寒松柏)은 국보 제180호의 '세한도' 그림의 제목에도 영향을 준 것 같다.
완당 김정희의 나이 59세인 1844년 제주도에서 귀양살이를 하고 있을 때, 제자인 이상적이 청나라 구해온 책을 두 차례나 많은 책을 보내준 정성과 의리에 감동받은 추사는 제자의 인품을 소나무와 잣나무에 비유해 그림을 그렸다. 글에는 답례로 그렸음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한 채의 집과 고목에서 풍기는 분위기가 찬 겨울이 맑고 고고하게 잘 표현되어 있으며, 우리나라 문인화의 최고봉으로 꼽힌다.
그림 오른쪽 윗부분에는 '세한도'라는 화제(畵題)와 '우선시상(藕船是賞) 완당(阮堂)'이라는 글자와 낙관이 그림의 구도에 무게와 안정감을 주고 있다. 그림의 왼쪽 부분에는 김정희가 해서체로 그림의 제작 이유를 적어놓았다. 그리고 시구를 쓴 '장무상망(長毋相忘)'이 찍혀 있다. 이중 가장 주목할 인장은 그림 오른쪽 아래에 있는 '오래도록 서로 잊지 말자'는 의미의 '장무상망(長毋相忘)'이다.
세한도(歲寒圖) 발문(跋文)의 앞부분을 짧게 소개해보면 다음과 같다.
去年以晩學大雲二書寄來 (거년이만학대운이서기래)
今年又以藕耕文編寄來 (금년우이우경문편기래) ...................... (중략)
迫切之極矣(박절지극의) 悲夫(비부) 阮堂老人書(완당노인서)
지난해엔 ‘만학집(晩學集)과 대운산방문고(大雲山房文藁)’ 두 가지 책을 보내주더니, 올해에는 하장령‘賀長齡의 경세문편(經世文編)’을 보내왔다. 세상인심의 박절(迫切)함이 극에 다다른 것이니라 슬프다 완당노인 쓰다.
완당 金正喜는 조선시대 4대 명필 중 한 사람으로 조선 후기 최고의 서예가로 평가받고 있다. 일찍이 북학파인 박제가의 제자가 되어 청라 고증학의 영향을 받았으며 24세 때에는 아버지를 따라 중국 청나라에 가서 금석학과 서체 등을 배웠고, 순조 16년(1816)에 북한산 진흥왕 순수비를 고증하여 밝혀냈다. 서예, 금석학. 고증학, 시문 등 여러 분야에서 뛰어났던 불세출의 천재 200년 전 중국과 일본을 사로잡은 '한류의 원조' 유럽에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있다면, 조선에 추사 김정희가 있었음이 자랑스럽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