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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일 2026-08-25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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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농부 아들이 대한민국 1호 표면처리 명장 되다!

감천면 출신 배명직 명장.....

기사입력 2026-08-11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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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에 '숙련기술인의 날'이 만들어진 이야기를 쓰면서, 그 시작에 있었다는 배명직이라는 분이 계속 궁금했어요. 그래서 이번엔 이분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좀 더 파봤습니다. 찾아볼수록 '이 사람 진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드는 이야기였어요1959, 경상북도 예천군 감천면의 한 농가에서 맏아들로 태어나셨대요.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던 시절이라 학창 시절엔 한때 방황도 있었다고 합니다
 

 

흔히 말하는 '문제아' 시기였다고 하니, 지금의 명장님 모습과는 좀 안 어울리는 시절이었던 셈이죠그런데 인생의 방향을 완전히 바꾼 계기가 있었어요. 고등학교 시절 취득한 '화학분석기능사'라는 국가기술자격증 하나였습니다. 이 자격증을 손에 쥔 순간부터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성실하고 열정적으로 변했다고 해요. 저는 이 대목이 참 흥미로웠어요자격증 하나, 어쩌면 별거 아니게 보일 수도 있는 그 종이 한 장이 한 사람의 인생 궤도를 통째로 바꿔놓았다는 게요. 그렇게 얻은 자격증을 들고 1978년 서울 도봉동의 한 도금공장에 취업하면서, 표면처리라는 분야와의 긴 인연이 시작됩니다.
 

 

당시 '나도 이런 큰 공장의 사장이 되어야겠다'는 꿈을 품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그 시절 흔한 다짐 같지만 실제로 그 꿈을 현실로 만들어낸 게 대단하죠그러다 1985, 스물여섯이라는 젊은 나이에 부천에 위치한 공장 터의 일부를 빌려서 '기양금속'이라는 이름으로 창업을 하셨습니다. 지금은 항공우주와 방위산업, 전자, 통신 분야까지 아우르는 표면처리 전문기업으로 성장했지만, 시작은 아주 작았던 셈이에요여기서 제가 좀 더 놀랐던 부분이 있는데요, 현장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뒤에도 배움을 멈추지 않았다는 점이에요.

전문대학 표면처리과에 들어가 전기도금기능사와 특수도금기능사를 추가로 취득하고, 이후 한국산업기술대학교(지금의 한국공학대학교) 신소재공학과에 편입해 학업을 이어갔다고 합니다. 손끝의 기술만 있는 게 아니라, 그 기술을 뒷받침하는 이론까지 함께 갖춘 셈이죠
현장 경험과 학문적 기반을 모두 갖춘 기술인은 사실 흔치 않다고 해요. 대개 둘 중 하나에 무게가 쏠리기 마련인데, 이분은 두 축을 다 밟아온 드문 케이스라고 합니다.

그렇게 쌓아온 노력은 결국 결실을 맺었습니다. 2007, 국내 1호 표면처리 분야 대한민국명장이자, 8호 기능한국인으로 선정되셨어요. 도금기술경기대회에서 대상을 여러 차례 수상하기도 했고요
44년 넘게 표면처리 한 분야만 파고든 결과라고 하는데, 이 숫자를 보면서 새삼 '숙련'이라는 단어의 무게를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니라, 정말 긴 시간 한 우물을 파야 도달할 수 있는 경지라는 걸요.

 

재밌는 건, 이 끈기가 개인의 성취에서 멈추지 않았다는 점이에요. 지난 글에서 다뤘던 것처럼, 이분은 이후 '숙련기술인의 날' 제정을 위해 3년 가까이 정부와 국회를 설득하는 또 다른 도전을 이어갑니다. 예천의 방황하던 소년이 자격증 하나로 인생을 바꾸고, 그 끈기로 명장이 되고, 그 명장의 자리에서도 멈추지 않고 결국 국가 제도까지 바꿔낸 거죠한 사람의 인생이 이렇게 계속 다음 도전으로 이어지는 걸 보니, '포기하지 않는다'는 말이 이렇게 구체적인 결과로 남을 수도 있구나 싶은 생각이 들면서 배명직 명인의 지칠줄 모르는 도전 정신을 나도 배워야 겠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마음이 뜨겁. [도움주는 사람들/노마드코드]

 

 

 

 

정차모 기자 (yci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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